[연재] 동백림의 세계를 보는 왼쪽 눈
AMLO에 대한 고별사 - 멕시코 진보정치 6년의 빛과 그림자
멕시코의 좌파 대통령 AMLO가 6년의 임기를 마치고 얼마 전 퇴임했다. "좌파 트럼프"라 불리며 많은 논쟁을 낳았음에도 후임자에게 성공적으로 정권을 승계하고 지지율 79%로 퇴임한 AMLO, 멕시코의 진보정치에 그가 남긴 빛과 그림자는 무엇일까?
이 글은 2018년에 집권하여 2024년 10월 1일 후임자 클라우디아 셰인바움(Claudia Sheinbaum)에게 정권을 승계하고 퇴임한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Andrés Manuel López Obrador, 약칭 AMLO)에 대한 고별사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중남미 지역에서도 가장 뜨거운 감자였던 21세기 멕시코 최초의 좌파 대통령 AMLO, 지난 6년 간 그가 남긴 빛과 그림자는 무엇인가?
멕시코는 올해 6월 대선과 총선을 통해 대통령과 500명의 하원의원, 128명의 상원의원 그리고 일부 주지사들을 뽑았다. 오브라도르 대통령이 속한 국가재건운동의 셰인바움이 대선에서 승리하여 정권을 재창출하였고, 하원에서는 여당연합 3당(국가재건운동, 멕시코 노동당, 멕시코 녹색당)이 365석을 획득하여 개헌선을 돌파하였다. 상원에서도 85석을 확보하여 개헌선 기준인 86석에 근접한 성적을 거뒀다. 현 3공화국 체제를 넘어선 멕시코 4공화국이 열릴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좌파 트럼프’라는 별명답게 불도저 같았던 오브라도르 정권 6년에 대한 멕시코 민중의 평가는 현재까지 합격점인 것으로 보인다.
2024년 멕시코 총선, 좌파 진영 승리의 이유
장기집권 12년을 보장받은 멕시코 좌파 승리의 요인은 무엇인가? 이를 알고자 한다면 오브라도르 정권 6년 간의 정책에 대해 알아보아야 한다. 사실 6년간 멕시코의 여러 사회지표는 큰 진전 없이 단지 심하게 악화되지 않았다는 설명이 정확하다. 물론 코로나 이후 현재까지 장기불황에 빠진 국제적 경제 상황을 생각하면 악화되지 않은 것 역시 양호하다 해도 무리는 없다.
그러나 경제 지표상의 큰 변화가 없었음에도 임기 마지막 한 달간 오브라도르 대통령의 지지율은 79%로 마무리되었다. 원인은 무엇일까? 첫 번째는 적극적인 빈민층 구제 정책이다. 사회복지정책의 실시로 멕시코 저소득층에서의 오브라도르 지지율은 압도적이다. 무려 1,500만 명이 오브라도르 취임 이후 6개월 만에 사회보장 혜택을 통해 절대 빈곤선에서 벗어났다는 통계가 나왔으며(2020년 빈곤율 43.9% -> 36.3%), 기존 고등학교까지만 해당되던 장학금 혜택 또한 대학까지 확대되어 제대로 된 직업을 찾는 사람들이 늘었다.
최저임금 또한 매해 두 자릿수의 인상률을 지켰다. 과거 멕시코의 연간 최저임금 인상률이 한 자릿수를 맴돌았던 것을 생각하면 6년간 두 자릿수, 그것도 20% 가까운 수치는 파격적인 기록이다. 오브라도르가 취임한 18년 이후 첫 임기인 18년과 21년을 제외하면 모든 해의 최저임금 인상률은 20% 이상이었으며, 아래 표에 반영되지는 않았으나 2024년의 인상률도 20%를 기록했다.
또한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특정 부문 일부를 제외한 아웃소싱(외주화)를 기본적으로 금지하는 법안을 추진하였고 이는 2021년 9월부터 발효되었다. 한국 사회에서도 대부분의 산재 사고가 하청과 재하청으로 외주화된 고용구조로 인해 발생하는 것을 떠올려 본다면, 이는 매우 중요한 개혁 성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법안 발효 이후 정규직 노동자 수는 급속도로 증가하였다. 23년 11월 기준 멕시코 사회보장청(IMSS)에 등록된 정규직 노동자 수는 2,240만 명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였고, 이는 팬데믹 시작 전인 2020년 2월에 비해 약 180만 명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아울러 정규직 노동자들의 평균 월급 역시 1만6천 페소(약 120만원)으로 높아졌고, 이는 오브라도르 임기 시작 전보다 약 40% 이상 상승한 수치이다.
오브라도르 정부는 사회 및 노동 분야에서의 급진적 개혁뿐 아니라 전력의 국가 통제 강화, 에너지 공공성 강화, 리튬 등 자원 국유화 등을 추진하였다. 이는 타 중남미 국가들처럼 외국, 특히 미국 자본이 국부를 강탈해간다는 정서를 공유하는 멕시코 민중들에게 크게 환영받았으며 국유화를 통해 부가 배분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게 되었다. 이는 멀리 아옌데, 가깝게는 룰라, 차베스, 모랄레스 등 중남미 좌파 지도자들의 선례를 따라 자원 민족주의를 잘 활용한 정책 방향성으로 평가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외교적으로는 제3세계 좌파 세력 간의 연대를 중요시하며, 팔레스타인 지지와 팔레스타인 국가 승인을 밀어붙였다. 더불어 미국의 쿠바 봉쇄를 비판하고 쿠바 원조와 쿠바 의사 수용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등 반제국주의적 성향을 명확히 했다.
또한 미국의 리쇼어링(주요 산업 국내 복귀) 정책으로 멕시코 또한 반사이익을 보게 되었는데, 미국이 하청 공장들을 중국에서 멕시코로 이동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멕시코 산업을 파괴한 주범으로 지목되던 NAFTA(현 USMCA) 체제가 역으로 현재 멕시코 산업 발전의 원동력으로 전환된 것을 어떻게 평가하고 극복할지는 멕시코 좌파들의 숙제가 되었다.
한편으로 오브라도르는 2018년 대선 시절 보수정당이었던 사회만남당(PES)을 끌어안음으로써 우클릭으로 정권 창출에 성공하였고, 이후 노동조합과 기업단체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현재 좌파연합에 소속된 멕시코 녹색당(PVEM)도 본래 보수주의 정당으로 분류되었던 정당이나, 역시 여당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적록연합 인민전선을 형성하였다. 이러한 정치력을 비롯해 경제적 성과와 정세적 호재는 지난 2024년 대선에서 멕시코 좌파 재집권의 원동력이 되었다 평가받는다.
오브라도르 정권의 그림자
그러나 모든 것이 그러하듯 오브라도르 정권에도 그림자는 존재한다. 특히 전력 분야의 국가 통제 강화 방향에서 기후위기 대응과 모순되는 문제점이 드러났는데, 과거 정권인 페냐 니에토 정부가 친환경 신재생에너지 발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전력 부문을 민간에 개방하였던 것이 새로운 문제로 나타났다. 오브라도르는 이를 전력 부문의 민영화로 판단하여 다시 공기업인 페멕스(Pemex)와 전력위원회 중심으로 재편하고자 했는데, 이 과정에서 페멕스가 석유화학기업이라는 점이 국내외 환경단체들의 반발을 초래했다. 오브라도르 정부는 친환경도 중요하지만 민영화 근절이 먼저라며 이러한 정책들을 밀어붙였고, 이 과정 중 헌법재판소에서 해당 정책에 대한 위헌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결국 이는 개헌 이슈로까지 불거졌는데, 이는 정부가 자원 관련 조항에 대한 것뿐 아니라 오브라도르 대통령의 정책에 사사건건 위헌이나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리는 판사들에 대한 보복성 정책으로 판사 직선제 개헌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결국 총선 이후 판사 직선제 개헌안이 통과되면서 현재 멕시코 내 사회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멕시코 사법부는 예전부터 부패한 것으로 유명했기 때문에 사법부 개혁에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나, 문제는 이 과정에서 여론 수렴보다는 대통령 개인의 의지로 밀어붙이는 포퓰리스트적 경향성이 나타났던 것에 있다. 이와 함께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멕시코 선거관리위원회를 집요하게 공격하며 예산을 삭감했는데, 이에 대해 오브라도르가 과거 2번의 낙선 경험 때문에 밉보인 선관위를 장악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또한 오브라도르 정부는 지나치게 군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였다. 오브라도르는 부패한 행정부와 경찰을 믿을 수 없다는 명분으로 개혁정책을 추진할 때마다 군을 끌어들였는데, 대표적으로 철도 국유화를 위해 외국 기업들의 사유철도를 강제수용할 때 군을 투입한 사례가 있다. 이는 내세우는 명분과 달리 군 장악을 통해 정권을 장기적으로 유지하려는 시도가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가 있으며, 실제로 일부 이권 사업을 군에게 넘긴 사례도 존재한다. 군에 대한 의존과 민주적 통제는 동전의 양면이므로, 이는 현재 멕시코 좌파 진영 내부에서도 논란이 많은 사안이다.
실제로 오브라도르의 정책은 좌익적 내용을 갖추었으나 대부분 대통령실이 주도하는 톱다운(Top-down) 방식에 가까웠다. 범죄와 치안 문제에서는 지난 정권들과 별반 차이가 없었으며, 상술한 기후위기 대응 과정에서의 문제와 마찬가지로 가난한 남부 지역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추진하는 마야 열차 사업(트렌 마야)도 치아파스 주 원주민들과 환경단체, 아나키스트 성향 지역 반군인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과의 갈등을 빚는 등 “적색 개발주의”의 한계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셰인바움 정권의 전망과 한국 진보운동에의 교훈
멕시코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자 유대인 혈통 대통령이 된 셰인바움은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며, 쿠바와 연대하는 등 오브라도르 대통령의 반제국주의적 외교관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셰인바움 정권은 전임자의 유산과 한계를 뛰어넘어 멕시코를 더욱 진보시킬 수 있을 것인가? 일단 새 정부가 출범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현재까지 멕시코 좌파의 기반은 튼튼하다. 지지층은 확고하며, 경제 상황 역시 순풍이다. 현재 지리멸렬한 우파 야권의 상황도 정부에게는 호재이다.
향후 주목해야 할 셰인바움 정권의 성패는 오브라도르가 실패했던 기후위기 의제, 그리고 전임자와 다른 종류의 리더십에 달려 있을 것이다. 오브라도르가 남긴 한계를 인식했는지 셰인바움의 에너지 정책에서는 오브라도르 대통령과의 차별점을 두고자 노력한 흔적들이 보인다. 그녀는 전임자의 에너지 산업 국유화 정책을 유지하면서도 친환경 발전 및 재생에너지의 비율 증진과 기후협약 준수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멕시코의 진보정치 계승과 ‘정의로운 전환’이 함께 이루어질 수 있을지, 또한 군의 역할을 축소시키며 문민통제를 확고히 할 수 있을지는 셰인바움 정권의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멕시코 진보정치의 성공 사례에서 한국의 진보정치가 얻어야 할 교훈은, 대중적 지지가 위대한 이론이나 훌륭한 말솜씨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브라도르는 멕시코시티 시장으로서 행정력을 인정받았고 그를 기반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셰인바움 역시 멕시코시티 시장 출신으로, 본인도 행정으로 인정받았으며 오브라도르 대통령의 유산을 경유하여 대통령이 되었다. 이는 작은 단위에서라도 실제 행정력을 입증하고 정책적인 대안을 보여주는 것이 진보정치의 중요한 승리 비결임을 입증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 기반의 강력한 구축이 필수적이다. 실제 멕시코 국가재건운동은 2012년부터 대도시 교외지역이나 남부 지방 등 사회적 빈곤층들을 집중 공략하여 지역 기반 구축에 성공했다. 같은 중남미의 칠레에서도 창당 이래 지속적으로 군소정당이었던 공산당의 지지율이 급등하는 과정에는 지방자치단체에서 행정 역량을 보여준 다니엘 하두에(Daniel Jadue)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그러나 한국의 사회운동과 진보정치는 지금까지 지방정치를 주변부로 인식하는 태도와 정세판단의 오류 속 이러한 부분에 무관심했고, 비례대표를 위주로 한 중앙정치 전술에 집중하는 과정에서 우경화 혹은 지지의 급격한 감소를 겪었다.
소수 정당에게 있어 여의도는 증명하는 자리가 아닌 투쟁하는 자리가 될 수밖에 없다. 진보정치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의제와 그를 통해 만들어지는 변화가 대중들 본인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고, 여기에서 필수적인 건 지방정부에서부터 시작하는 행정 능력의 입증이다. 오브라도르 정부와 셰인바움의 성공 사례는 이를 뒷받침한다.
대중의 선택은 항상 옳지 않을 수 있지만, 대중의 외면은 냉정하다. 증명하지 못하면 버려진다는 것이 수많은 세계 진보정치운동의 역사가 한국의 진보좌파에게 주는 교훈이다. 지금은 무엇인가를 증명할 수 있는 현장으로 돌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동백림
혁명과 개량 사이에서 고민하는 국제정세 오타쿠.
현재 시민사회단체 상근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도모에 <동백림의 세계를 보는 왼쪽 눈>을 정기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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