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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가자 학살 1년: 격랑의 중동 정세, 어디로 가는가?

by Domoleft 2024. 10. 2.

[국제] 가자 학살 1년: 격랑의 중동 정세, 어디로 가는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학살이 시작된 지 어느덧 1년을 앞두고 있다. 전쟁을 멈추기는커녕 이제는 헤즈볼라, 이란과의 전면전까지도 불사하겠다는 이스라엘, 어느새 제5차 중동전쟁이 우리의 턱밑까지 다가왔다.


10월 1일(현지시간) 이란의 탄도미사일에 공격당하는 이스라엘의 최대도시 텔아비브. 출처: 로이터

 

작년 10월 7일 벌어진 하마스의 공격과 뒤이은 이스라엘의 잔혹한 가자지구 학살이 시작된 지 어느덧 1년을 앞두고 있지만, 중동의 화마(火魔)는 당분간 끊어질 기미가 없어 보인다. 최근 이스라엘의 극우 네타냐후 내각은 가자지구에 대한 가혹한 봉쇄와 폭격을 지속하면서도 북부의 레바논으로 전선을 확장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스라엘군과 모사드의 무선호출기 테러, 헤즈볼라 지도부 제거 및 레바논 지상군 투입은 헤즈볼라의 동맹인 이란을 자극했고 결국 10월 1일 밤 이스라엘 최대도시 텔아비브에 이란의 탄도미사일이 떨어지는 결과를 불러왔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본토 공습에 맞대응을 예고했고, 각국의 언론과 전문가들은 제5차 중동전쟁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가장 근접했다는 평을 쏟아내고 있다. 지금 동아시아의 우리는 어떤 정세인식을 가지고, 중동의 평화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네타냐후의 폭주

2023년 10월 훨씬 이전부터 비민주적 사법개혁, 극우 시오니스트들의 각료 배치로 논란을 겪던 리쿠드당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에게 하마스의 공격은 정부를 유지할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 하마스에게 붙잡힌 인질의 가족들을 주축으로 현재 이스라엘의 시민사회는 전쟁을 멈추고 인질을 석방시켜야 한다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지만(물론 이 운동은 '팔레스타인인들의 인권 보장' 따위와는 여전히 거리가 멀다), 네타냐후는 수백만이 참여하는 인질 협상 촉구 시위를 무시하고 "하마스의 절멸"만을 외치며 여전히 가자에 매일 수백 발의 포탄을 떨어뜨리고 있다. 그러나 가자와 하마스에 대한 초강경 무력투사를 지속함에도 네타냐후가 처한 국내정치적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네타냐후의 인질 협상 및 휴전협정 거부로 인해 거국내각은 해체되었고, 결국 야당 당수인 베니 간츠(Benny Gantz)에게 총리 후보자 선호도 1위를 넘겨주는 등 지지율 하락이 두드러졌다. 이에 네타냐후의 대응은 가자를 넘어선 주변국으로의 전쟁 확대였다.

 

2024년 중반부터 이스라엘군의 작전은 그 자체로 국경을 넘어선 국제 테러리즘의 영역에 진입했다. 2024년 4월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에 위치한 이란 대사관은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파괴되었다. 2024년 7월 31일 하마스의 정치국장 이스마일 하니예는 이란 신임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했다가 수도 테헤란의 한복판에서 암살당했다. 8월 말에는 레바논 남부에 위치한 헤즈볼라의 무기고와 기지를 선제타격했다. 그러나 이 때까지도 본격적 중동전쟁으로의 확전 가능성이 아주 높게 점쳐지지는 않았다. 이란의 신임 대통령 마수드 페제시키안이 서방과의 관계 복원을 원하는 온건파 소속이고, 이란 정부 역시 반서방·친팔레스타인적 언사와 별개로 확전의 부담으로 인해 가자와 하마스에 대한 적극적 지원을 꺼려 왔기 때문이다. 헤즈볼라 역시 이스라엘에 대한 본격적 무력 투사를 자제해 왔다.

(좌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 이스마일 하니예 전 하마스 정치국장, 하산 나스랄라 전 헤즈볼라 사무총장

 

확전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가 무력화된 것은 9월이었다. 현지시간 9월 17일 레바논 전역과 시리아 일대에서 수천 대의 무선호출기(삐삐)가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테러로 약 2,7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보고된 아동 사상자도 50여 명을 넘어섰다. 이스라엘은 이 테러에 대해 침묵을 유지했지만, 추가적 조사에 의하면 통신보안을 위해 무선호출기를 사용하는 헤즈볼라 대원들을 노리고 모사드가 5,000여 대의 호출기에 폭발물을 미리 심어 놓은 사실이 드러났다. 미 국무부는 본 테러에 대해 알지 못했다 밝혔으나, 미국 매체 액시오스는 이스라엘이 테러 공격 실행 전 미국 주요 당국자에게 이 사실을 통보했음을 보도했다.

 

삐삐 테러는 본격적인 레바논 침공의 전초전이었다. 9월 20일부터 시작된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헤즈볼라 특수부대 사령관이 사망했다. 9월 28일 새벽 이스라엘은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 대규모 공습을 가했다. 헤즈볼라의 지도부를 노렸다고 알려진 공습으로 헤즈볼라 사무총장 하산 나스랄라가 사망했고, 민간인과 헤즈볼라 조직원을 포함하여 약 1,500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헤즈볼라는 즉각 성전(지하드)을 천명했고, 헤즈볼라의 핵심 동맹인 이란도 헤즈볼라에 대한 총력 지원을 선언했다. 10월 1일에는 이스라엘 지상군이 레바논 남부에 투입되었고, 같은 날 늦은 밤 이란 혁명수비대가 발사한 탄도미사일은 결국 텔아비브를 타격했다.

 

이스라엘은 과거 1982년과 2006년 레바논에 지상군을 투입한 전적이 있다. PLO(팔레스타인 해방기구) 소탕을 명목으로 레바논 내전에 개입했던 1982년, 이스라엘군은 마론파 기독교 민병대의 팔레스타인 난민촌 학살을 조장했다. 후일 사브라-샤틸라 학살(Sabra-Shatilla Massare)로 불리게 된 이 사건은 영화 <바시르와 왈츠를> 등에서 다루어졌다. 헤즈볼라와의 전쟁을 치렀던 2006년 이스라엘군은 레바논 남부의 민간인 거주지에 백린탄을 동원한 폭격으로 직접 민간인 학살을 벌인 바 있다.

 


말살된 생존권, 묵인하는 제1세계

2024년 가자지구 도심의 흔한 풍경. 출처: Vox

 

네타냐후의 권력 유지를 위한 폭주, 이스라엘군의 테러리즘과 전쟁의 확대에 누구보다 고통받는 것은 가자와 웨스트 뱅크, 레바논의 평범하기 그지없는 시민들이다. 작년 10월부터 지금까지 1년 간 가자 지구에서만 약 41,000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숨졌고, 레바논에서의 사망자는 이스라엘의 침공이 개시된 지 4일 만에 800명을 돌파했다. 민간인을 구별하지 않는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인해 사망자 중 다수는 아동과 여성으로 집계되고 있다. 최근 이란이 본격적인 이스라엘 본토 타격을 시작하고 이스라엘이 강경 대응을 예고하며, 향후 이란의 사상자가 늘어날 가능성도 점쳐진다. 중동 전역으로 전쟁이 번진다면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다.

 

그러나 네타냐후 정권이 스스로 전쟁과 학살을 중지할 가능성은 이전보다도 더욱 요원해졌다. 9월 30일 이스라엘 일간지 타임즈 오브 이스라엘에 따르면, 네타냐후와 집권 리쿠드당의 지지율은 헤즈볼라 타격 이전보다 유의미하게 상승했다. 하마스와의 인질 협상 대신 레바논으로의 전쟁 확대가 이스라엘 국내 극우 시오니스트들의 지지율을 집결시킨 것이다. 이에 더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헤즈볼라 지도자 나스랄라의 사망에 대해 "테러리스트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할 이스라엘의 권리를 전적으로 지지한다" 밝혔다. 수없이 밝혀진 이스라엘의 민간인 학살과 테러 행위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여전히 이스라엘에 무기를 지원하고, 팔레스타인 국가 승인 표결에 일관적 반대표를 던지고 있다. 바이든을 대신하여 대선 후보가 된 해리스도, 극우주의자 트럼프도 이 점에서만은 이견을 보이지 않는다.

 

'K-방산'을 내세우며 방위산업 강국임을 천명하는 한국 역시 이스라엘의 테러리즘과 학살을 방조한다는 혐의에서 자유롭기란 힘들다. 국제앰네스티에 따르면, 윤석열 정부는 가자 학살이 개시된 이후 최소 128만 달러 이상의 무기를 이스라엘 당국에 수출한 바 있다. 해당 거래 내역은 공식적으로 밝혀진 최소치이고, 정부가 올해 UN 무역통계에서 한국의 무기수출입 통계를 비공개 요청한 것 역시 전쟁범죄를 저지르는 국가에 대한 무기수출을 용이하게 하려는 의도일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국내에서 개최되는 주요 무기 박람회에는 IAI(이스라엘항공우주산업), 엘빗 시스템즈 등 이스라엘의 핵심 방산업체들이 현재도 초청 대상에 오르고 있다. 'K-방산'의 성과 중 최소한 일부가 중동 민중의 생존권을 댓가로 한 것임을 부정하기란 쉽지 않다.

 


전쟁, 테러리즘과 학살에 맞설 국제연대가 필요하다

전환 논평 <중동전쟁 부추기는 테러국가 이스라엘, 레바논 공습 즉각 중단하라!>. 출처: 전환

 

네타냐후 정권의 폭주로 중동의 전쟁 위기가 점증할수록, 국제적으로 이스라엘의 테러리즘과 집단학살에 맞서는 연대 운동의 목소리가 강해지고 있다는 것은 암울한 정세 속 몇 안 되는 희망이다. 각국의 진보·좌파 세력은 이스라엘의 잔혹행위를 알리고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모아내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들은 지속적으로 자국 정부 및 이스라엘 정부에 가자지구에서의 휴전을 압박하고, 레바논과 이란으로의 전면 확전 중단을 요구한다. 이러한 노력들은 작지만 분명한 성과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최근 치러진 영국 총선에서는 시오니즘에 반대하고 팔레스타인에 연대하다 '반유대주의' 혐의로 노동당에서 제명된 전 노동당 대표 제레미 코빈(Jeremy Corbyn)을 비롯하여 팔레스타인과 함께하는 무소속 후보 5명이 지역구에서 당선되었다. 스페인, 아일랜드, 노르웨이는 지난 5월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승인하였고, UN 총회에서는 회원국의 절대 다수인 143개 국가가 팔레스타인의 정회원국 가입에 찬성표를 던졌다. 지난 3월에는 이스라엘의 최중요 동맹국인 미국 시민의 과반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군사작전에 반대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오는 10월 5일(토) 오후 2시, 보신각에서 가자지구 집단학살 1년을 맞아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전국 집중행동의 날 행사가 개최될 예정이다. 전환 역시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시민사회긴급행동'에 2023년 10월부터 공동 집행 단위로 함께하고 있다. 지구 반대편 동아시아의 우리가 팔레스타인 해방의 연대자가, 가자와 레바논 민중의 연대자가 된다는 것이 그리 쉽게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대만해협, 점증하는 우리 시대의 전쟁위기 속 우리의 턱밑까지 다가온 지구 반대편의 어떤 전쟁을 거부한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지금 우리의 인간성을 지키는 일일 뿐 아니라 연결된 위기의 시대에 우리 자신에게 닥쳐올지 모르는 전쟁을 막기 위한 소소하지만 효과적인 행동일지도 모른다.

10/5(토) 보신각에서 진행되는 가자지구 집단학살 1주년 이스라엘 규탄 집회. 출처: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시민사회긴급행동

 


이도영

전환 기관지 편집위원장.

아마추어 디자이너 일도 가끔 한다.

여전히 사회운동과 진보정치가 만들 다른 세상의 가능성을 믿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