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남북한의 우크라이나
전쟁의 시대 속, 북한의 우크라이나 파병에 대해 윤석열 정부는 사실상의 대리전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과연 언제까지 이역만리의 전쟁일 수 있을까?
많은 신문들이 그렇듯, 영국 일간지인 파이낸셜 타임즈는 연말연시가 되면 늘 ‘올해의 단어들’을 선정하여 발표한다. 재작년인 2022년을 상징하는 단어의 하나로 경제 전문지답게 ‘인플레이션’을 꼽은 이 신문은, 특이하게도 독일어인 ‘자이텐벤데(Zeitenwende)’도 더불어 선정했다.
흔히 ‘시대전환’으로 번역되곤 하는 ‘자이텐벤데’는 자이트(Zeit, 시대·시간)와 벤데(Wende, 전환·변화) 두 단어가 합쳐진 복합명사이다. 동독의 집권당이었던 사회주의통일당(SED)의 마지막 서기장인 에곤 크렌츠(Egon Krenz)가 1989년 10월 취임 연설에서 처음으로 사용한 ‘벤데’라는 단어에는 독일 현대사의 맥락을 관통하는 매우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다. 이 단어는 동독 국가 노선의 ‘방향전환(Richtungswechsel)’을 뜻하는 것으로, 동독의 민주 혁명과 베를린 장벽 붕괴, 이어진 독일 통일의 과정을 한 마디로 설명하는 개념이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초래한 혼란스러운 시대를 정의하기 위해 33년만에 ‘벤데’를 재소환하여 독일인들에게 울림을 주고자 했다. ‘벤데’가 민주적·평화적으로 냉전을 종식시키고 탈냉전이라는 희망찬 새 시대를 연 독일의 자부심으로 기억되어 왔다면, ‘자이텐벤데’는 탈냉전이 끝난 어지러운 시대를 맞아 이제 독일이 외교·국방·경제·에너지 등 제반 정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하는 전환점에 들어섰다는 경고등이다. 숄츠 총리는 이어서 1000억 유로(당시 환율로 약 125조원)의 특별국방기금 조성과 국방비를 GDP의 2% 규모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한 술 더 떠 같은 해 6월 유럽 최대 방위산업 전시회인 ‘유로사토리 2022’ 개막 연설에서 ‘전쟁경제 진입’과 ‘국방계획법 재평가’를 촉구했다. 이 소식을 전하는 ‘르 피가로’는 ‘충격’이라는 말로 기사를 시작한다. 경제학자 에릭 모네에 따르면 ‘전쟁경제(Economie de guerre)’는 제1차 세계대전중에 군사적 목적을 위해 경제가 총동원되고 생산수단이 군사기구에 집중되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용어로써, 처음에는 단지 ‘평화경제(자유주의 경제)’에 반대되는 의미였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2022년 러시아 국방비가 GDP의 4%였다는 점에서 당시 러시아도 전쟁경제 단계에 진입하지 않았는데, 하물며 전쟁 당사국도 아니고 2023년 GDP의 1.9%만을 국방비에 지출한 프랑스의 경제를 ‘전쟁경제’에 비유한 마크롱의 발언은 부적절했다고 평가한다.
마크롱 대통령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첫째, 장 조레스 재단의 르노 벨레는 그가 충격요법을 통해 대중의 합의를 도출할 목적으로 그 같은 표현을 사용했다고 본다. 이는 마크롱이 구사하는 특유의 화법이다. 아마도 그는 국방비 증가와 군사장비 생산 증대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잠재우기 위해 ‘전쟁경제’라는 긴급 카드를 꺼냈을 것이다. 둘째는 그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군사주의 세계관이다. 코로나-19 위기가 시작되었던 2020년 3월의 방송 연설에서 마크롱은 봉쇄정책을 발표하며 ‘우리는 전쟁 중입니다(Nous sommes en guerre)’라는 표현을 6번이나 사용했다. 이외에도 그는 국가발전계획을 ‘시민 재무장’이나 ‘경제 재무장’에, 출산율 증가를 ‘인구 재무장’에 비유하는 등 상황의 묘사와, 위기의 극적인 타개를 위해 군사주의로 분장한 ‘은유’를 활용하는 방식을 선호해 왔다.
마크롱과는 다른 관점에서 전쟁이 자본주의 체제의 주요한 특성으로 재부각되고 있다고 분석하는 이들도 있다. 스페인의 철학자이자 활동가인 라울 산체스 세디요(Raúl Sánchez Cedillo)는 일찍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우크라이나만으로 끝나지 않고 국제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측했는데, 그 이유는 첫째, 현세계는 미국이 쇠퇴하고는 있으나 패권을 상실하지는 않은 ‘체계적 카오스’(지오바니 아리기)의 시대이기 때문에 미국은 달러의 지배력과 군사력의 우위를 앞세워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세계 지위를 유지하고자 할 것이라는 점이다.
둘째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유럽의 대응 역시 군사주의적 방식에 기초한다는 점이다. 긴축정책 기조 하의 유럽에서 국방비의 증가는 사회복지의 후퇴를 초래할 수밖에 없는데, 대중들은 권위주의와 파시즘 지지로 이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여기서 그가 새롭게 제시한 정치논리인 ‘전쟁체제’는 유럽의 국내외 정치에서 적과 동지가 근본적으로 구분되는 관계를 말하는 것으로써, 이 체제는 사회 위기와 그에 따른 상황의 악화를 ‘구성된 적’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서사를 정교하게 만들어 확산시킨다. 그 끝은 과거의 파시즘이 그랬던 것처럼 언젠가 전쟁이 사회·정치모순의 해결책이자, 질서를 강요하는 수단으로 다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좌파의 지지가 타격을 받은 이유는 좀비화된 스탈린주의가 여전히 잔존한 가운데 좌파(red)와 극우(brown)의 융합인 좌파 권위주의 담론이 좌파의 공간을 잠식하였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좌파가 군사적인 대응을 두고 상반된 입장을 표출하는 등 유럽의 군사화가 확대되는 흐름 앞에서 분열했기 때문이다.
마이클 하트와 산드로 메자드로는 라울 산체스 세디요의 ‘전쟁체제’ 개념을 세계체제론과 결합하여 ‘세계전쟁체제’라는 가설을 내놓았다. 이들은 세계가 끊임없는 전쟁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세계체제가 불안정하게 되었다고 진단하였다. 만약 전쟁이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이동하거나 주변부의 전쟁에 강대국들이 개입하여 확대된다면 우리는 지금을 세계패권의 전환기로 이해할 수 있겠으나, 현재 세계는 미국이 패권을 상실하고 새로운 패권국가가 등장하는 시대에 진입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패권이 약해져 위기가 체제의 표준이 되는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이를 두고 마이클 하트 등은 ‘세계전쟁체제’라는 개념으로 이론화를 시도해 왔다.
이 체제의 특징은 군사주의의 핵심인 상명하복, 권위에 대한 복종, 위계질서 확립의 형태로 사회 구성원을 통제하려고 애쓰고, 경제와 군사 영역의 경계가 모호해지며, 군사동맹은 국가간의 경제네트워크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현재 최첨단 기술들은 민간과 군이 모두 사용할 수 있는 이중용도기술이다. 예를 들면 미국의 팔란티어 테코놀로지스는 각종 정보를 수집, 관리, 분석, 재가공하여 유용한 정보로 사용하는 빅테이터 프로세싱 기업이었지만, AI 기반의 디지털 킬체인을 구축하여 우크라이나군의 표적 처리 시간을 대폭 단축시키는 역량을 과시하며 최첨단 국방기업의 위상을 확보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응한 대러 제재는 에너지·식량·자원의 전세계 공급망에 강력한 충격을 가했고 미국의 공급망 재편 정책인 프랜드쇼어링은 명백히 군사적인 의도가 포함돼 있다. 중동전쟁의 홍해 확대는 세계 물류망에 악영향을 미쳤으며, 그 이전에 이미 아브라함 협정은 중동의 물류 연결망과 인프라를 중국의 일대일로정책으로부터 보호하려는 미국의 전략이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전쟁과 금융은 밀접한 연관성을 맺고 있다. 영국 역사학자인 마이클 소넨셔에 따르면 자본가(capitaliste)는 원래 프랑스에서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1740∼1748년) 이후 왕실 정부에 전쟁비용을 빌려주던 사람을 지칭했다. 18세기 유럽의 왕들이 전비를 부채로 조달한 주된 이유는 의회의 조사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1694년 프랑스와 ‘9년전쟁’을 치르고 있던 영국 왕실은 전비 조달을 위해 중앙은행의 기원인 영란은행 설립을 받아들였고, 국채 소매시장의 출현은 1940년대 미국이 전쟁채권 일부를 개인에게 판매한데서 비롯된다. 전쟁은 바로 금융자본주의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확인되는데, 전쟁의 발발로 인해 유럽에서는 금융과 무기산업이 다시 연결됐다.
‘르 몽드’는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유럽 방산업계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반전을 맞았다는 사실을 전쟁 초기에 보도한 바 있다. 스웨덴 금융그룹 SEB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기준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제외하던 방위산업을 펀드에 편입하기로 결정하였고, 독일 코메르츠방크 역시 무기산업 투자를 공식 발표했었다. 현재 미국의 군사혁신은 사실상 벤처투자자들이 주도하고 있으며, 금융 저널리스트인 제이콥 올린스키는 올 2월 야후 파이낸스 칼럼에서 “전쟁이 있는 곳에서 돈을 벌 수 있다.”는 명언을 남겼다. 미국의 투자회사 제이피모건은 지난 해 10월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하자, 4분기에 방산업체 록히드 마틴 주식을 대거 매수하였고, 지난 4월 이란이 이스라엘에 대량의 미사일 보복 공격을 단행하자마자, 록히드 마틴의 주식 목표 가격을 상향했다.
전쟁이 만연하고 장기화되는 시대에 남·북한은 우크라이나를 적극 이용하고 있고, 이제는 대리전까지 치를 기세이다. 지난 2022년 8월 러시아 국영 언론과 러시아 내 야당 국회의원들 일부가 북한군 10만 명 러시아 파견설을 제기한 바 있는데, 당시 서방 언론들은 이를 근거가 희박한 러시아 측의 희망사항으로 해석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 보도들은 어느 정도 사실에 부합한 것이었다.
이 문제를 국제적으로 부각하고 부풀리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의중은 간단하다. 첫째, 중동전쟁에 우선순위가 밀린 서방의 지원을 원활하게 받아 러시아 영토 내부를 직접 타격하고자 하는 것이다. 둘째, 더 나아가서 우크라이나의 승리보다는 러시아의 고립과 약화라는 정치적 목적을 우선시하는 서구에게서 파병과 같은 직접 개입을 이끌어내려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기본적으로 총체적 국력의 차이가 있다. 우크라이나의 승리 가능성이 희박한 가운데 젤렌스키는 북한이라는 소재를 이용해서 판을 뒤집고 싶다는 욕망을 마구 발산하고 있다.
북한군의 투입으로 전쟁이 격화되어 나토군이 공식 참전하는 상황이 조성될 수도 있겠지만, 군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 북한의 참전이 전황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지 않다면 우크라이나군은 북한군 투입 이전에 이란의 샤헤드 자폭드론이나 북한의 화성-11가 전술탄도미사일의 파괴력에 밀려 일찌감치 패퇴했어야 한다. 러시아의 전쟁 수행에는 중국과 인도의 러시아산 석유 수입 여부가 더 큰 영향을 미친다. 북한이 반대급부로 수혜를 입게 될 외화와 전투 경험 그리고 군사기술 또한 부차적이다. 문제는 머나먼 이국 땅에서까지 남북한이 대결 구도를 치러야만 하는 현실에 대한 답답함이다.
윤석열 정부는 북한에 대한 적대감을 우크라이나로까지 확장하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할 것이다. 사회학자 백승욱은 ‘연결된 위기’에서 세계 체제가 해체에 접어들고(그는 동요하는 얄타 체제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기점으로 해체로 나아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대안 질서가 합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위험지역의 갈등이 서로 연동된다면 순차적으로 또는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위기가 폭발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의 주장이 갖는 타당성을 일정하게 인정한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최선의 방책은 우크라이나와 대만 문제가 한반도와 연계될 가능성에 항상 대비하고, 이 같은 흐름을 한반도에서 적극적으로 차단하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그동안 우크라이나 전쟁에 지나치게 몰입해 왔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중동전쟁은 사실 전 세계가 아니라 유럽과 중동이라는 특정 지역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정치학자 이반 크라스테브(Ivan Krastev)는 인도인과 콜롬비아인의 입을 빌어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세계의 미래가 아니라 유럽의 미래에 국한된 것이라고 일갈했다. 백승욱과 이반 크라스테브의 차이는 중견국과 글로벌 사우스를 보는 관점이다. 백승욱은 세계 체제의 변화 과정에서 이들 국가군을 변수로 인정하지 않는 반면, 이반 크라스테브는 이들 국가들이 지정학 질서의 재편 과정에서 일정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공간이 열려있다고 평가한다. 때로는 자유주의자의 현실 진단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우리도 이 공간을 활용해야 한다.
현재 미국은 전쟁을 지속하면서도 확전과 축소의 영역은 충분히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잘못된 판단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 같은 생각은 무모하고 위험할 뿐이다. 전쟁은 자로 눈금을 재듯이 정확하게 관리할 수 없다. 왜냐하면 전쟁은 변수가 너무 많아, 계획하고 의도한 바대로 움직여 주지 않기 때문이다. 조선 말기의 개혁파 실학자 박규수는 1876년 일본과의 수호조규 체결 문제를 둘러싼 조선 조정의 갈등 국면에서 좌의정 흥인군 이최응에게 올린 ‘답상좌상’을 통해 우리가 아무리 준비가 잘 되어 있다 하더라도(필자 의역), 전쟁을 하는 것은 전쟁이 없는 것만 못하다고 하였다. 남북의 지도자들도 한반도를 위기로 내모는 오판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도모>의 편집 방향 및 전환의 입장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배인선
안보비평가. 레디앙에서『국방칼럼』을 써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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