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다시 열린 퇴진광장: 12월 7일 여의도 집회 현장 스케치
지난 12월 7일, 내란수괴 윤석열을 끌어내리기 위해 수많은 시민들과 민주노조 조합원, 활동가, 진보정당 당원들이 여의도를 가득 메웠다. 광장의 열기와 끝나지 않은 투쟁의 의의를 다시 한 번 짚어 보고자 한다.
분노한 시민들, 국회 앞을 뒤덮다
윤석열의 위헌·위법한 불법계엄 선포 및 내란 시도로부터 4일이 지난 지난 12월 7일, 윤석열정권퇴진운동본부(준)가 개최한 윤석열정권 퇴진 3차 총궐기 범국민대회가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개최되었다. 약 100만 명(주최측 추산)에 달하는 시민들과 민주노조 조합원, 활동가, 진보정당 당원들은 국회 앞을 가득 메우고 탄핵소추안의 가결을 촉구하며 내란수괴 윤석열과 종범 국민의힘을 함께 규탄했다. 이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한반도에서 열린 최대 규모의 집회·시위였으며, 8년 전인 2016년 연말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촛불집회를 연상케 하는 광경이었다.
민주노총은 긴급투쟁지침을 내려 전 조합원에게 국회 앞 집결을 호소했으며, 공공운수노조, 금속노조를 비롯한 주요 산별 단위들은 각각 총파업대회를 열어 조합원들의 투쟁 열기를 모아내었다. 이외 각 진보정당들과 시민사회단체들 역시 여의도로 총집결하여 윤석열의 즉각 퇴진을 외쳤다. 인파의 밀집으로 인해 9호선 국회의사당역, 5호선 여의도역은 한때 지하철이 무정차 통과하기도 했다.
국회대로를 가득 채운 대오는 오후 3시부터 본집회를 시작했다. 양대노총 위원장과 시민사회단체 대표자들의 발언이 이어졌고, 다양한 시민발언도 함께 진행되었다. 현장에 모인 시민들은 국회 본회의장 생중계를 대형 스크린으로 보며 분노와 규탄을 함께하기도 했다. 김건희 특검법이 3표 차이로 부결되고 오후 6시경 탄핵소추안 표결이 시작된 직후, 전체 대오는 거대한 물결이 되어 국회 앞으로 행진하며 국회를 에워쌌다.
수많은 사람들이 6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국회 앞에서 구호와 함성으로 국민의힘 의원들을 압박했지만, 탄핵소추안은 결국 통과되지 못했다. 국민의힘 의원 중 3명(안철수, 김예지, 김상욱)을 제외한 전원은 본회의장 퇴장으로 표결의 불성립을 유도했고, 우원식 국회의장은 오후 9시 20분 경 정족수 미달로 인한 표결 불성립을 선언했다. 이에 집회 역시 9시 30분 경 시민사회 입장문 발표를 끝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아쉬움과 패배감보다는 결의와 흥이 가득했다. 이들은 다음 주에도, 그 다음 주에도 탄핵이 가결될 때까지 다시 광장에 모일 것을 약속하며 일상으로 돌아갔다.
광장에 모인 다양성, 혐오에 함께 맞서다
이번 집회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축제로서의 집회'가 만들어낸 다양성이었다. 흔히 '촛불집회'로 규정지어져 온 한국의 시위문화는 지난 12월 7일을 계기로 '응원봉 집회'로 한 단계 진화했다. 많은 아이돌 팬덤은 각자의 콘서트에서 흔들던 응원봉을 들고 집회에 참석했고,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부터 로제의 최신 곡인 <APT>까지 케이팝 씬의 주요 곡들을 함께 부르며 국회를 향해 행진했다. 8년 전 박근혜 퇴진 운동 당시에도 이화여대 등에서 많은 청년학생들이 아이돌 노래를 불렀지만, 이번 집회는 그런 수준을 넘어 MAMA(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를 연상시킬 만큼 흥겹고 다채로운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새로운 집회 문화는 기성 사회운동에 있어 다소간의 충격을 안겨 주었지만, 그와 동시에 세대 간 운동의 경험이 교차하는 새로운 경험을 모두에게 선사했다. 간혹 <임을 위한 행진곡>이나 <광야에서> 등 오래된 민중가요가 나올 때, 응원봉을 든 아이돌 팬들 중의 다수는 가사를 모를지언정 박자에 맞추어 주변 사람들과 함께 팔뚝을 흔들곤 했다. 아이돌 팬덤이 주로 이용하는 SNS인 X(구 트위터)에서는 "집회인데 민중가요도 좀 틀어 주면 안 되냐" "이 참에 민중가요 플레이리스트 공유함" 등의 트윗이 십수 만의 리트윗을 받기도 했다.
일부 기성세대 활동가들은 "아는 노래가 너무 없다"며 불만을 표하기도 했지만, 대다수의 경우 청년층의 주체적 참여를 고무적으로 평가함과 함께 새로운 문화를 생경하지만 재미있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였다. 이와 함께 청년 여성이 중심이 된 커뮤니티에서는 "국회 앞 길을 열어 준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멋졌다" 등의 게시물이 많은 공감을 얻기도 했다. 전혀 다른 문화와 배경을 가진 다양한 세대의 사람들이 운동의 경험을 통해 교차할 수 있다는 연대의 가능성을 보여 주는 일화들이었다.
한편 그 어느 때보다 폭넓은 다양성이 비춰졌던 공간인 만큼, 이번 집회에서는 대규모 집회나 대중운동에서 흔히 일어나 왔던 여성혐오, 소수자 혐오에 전면적으로 제동을 거는 발언이 등장하여 눈길을 끌었다. 계엄 선포 당시 국회 앞으로 달려갔던 페미당당의 심미섭 활동가는 집회 발언을 통해 지난 2016년 박근혜 퇴진 운동 때 흔히 사용되었던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 등의 여성혐오적 구호를 되짚으며 이번 윤석열 퇴진 운동에서도 역시 김건희 개인에 대한 내용적 비판이 아닌 "쥴리" 등의 여성혐오적 비난들이 난무하고 있고, 이것이 여성과 소수자들을 광장으로부터 배제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심미섭 활동가는 투쟁 현장에서 혐오에 맞서는 것이 결코 '나중에'가 될 수 없다며 동료 시민인 페미니스트와 여성, 소수자들이 안전하게 윤석열 퇴진을 함께 외칠 수 있어야 함을 요구했다. 심 활동가의 발언은 청년 여성이 중심이 된 아이돌 팬들을 비롯하여 현장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의 동의와 환호를 받았다. 그러나 그가 지적한 대로, 해당 발언 도중에조차 적지 않은 수의 남성 참여자들이 "페미는 내려가라" "우리가 탄핵하러 왔지 페미 연설 들으러 왔냐" 등을 외치며 배제와 혐오를 선동하는 모습이 여전히 보여지기도 했다.
페미니즘과 성소수자에 대해 가해진 언어폭력과 더불어, 단상에 오르기로 한 일부 발언자의 과거 행적 역시 논란이 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과거 박원순 사건 당시 피해자의 실명을 공개하는 등의 2차가해로 논란을 빚었고 결국 성폭력처벌법 위반으로 처벌받았던 촛불행동의 김민웅 상임공동대표가 지난 6일 집회의 발언대에 선 것은 여성운동을 비롯한 사회운동 진영의 거센 항의를 불러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혐오에 맞서는 사회운동의 투쟁으로 인해 광장이 조금씩이나마 바뀌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성과로 볼 수 있다. 김민웅은 이후 7일 집회에서의 발언을 취소해야만 했고, 더불어민주당은 이러한 비판을 의식하여 지난 12월 9일 모든 공직자와 주요 당직자들을 대상으로 모든 활동에서 차별적 발언과 혐오 발언을 철저히 배제하라는 행동지침을 내렸다. 홍명교 체제전환운동 조직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은 개인 SNS를 통해 "대중운동이 불의와 혐오를 이긴다"며 심미섭 활동가의 발언 당시 야유보다 박수와 함성이 압도적으로 컸다는 것은 8년 전의 박근혜 탄핵 당시와 분명히 달라진 점임을 강조했다.
진보 3당과 체제전환운동, 공동투쟁을 결의하다
한편 오후 3시에 시작된 본대회에 앞서 노동당·녹색당·정의당의 진보 3당과 플랫폼c·인권운동사랑방 등 체제전환운동 조직위원회 참여 단위들은 오후 2시 사전 결의대회를 진행했다.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 모인 약 500여 명의 진보정당 당원들과 체제전환운동 활동가들은 윤석열의 퇴진과 구속을 넘어, 윤석열을 낳은 근본적인 원인인 제왕적 대통령제와 결별하고 낡은 자본주의 체제를 전환하자는 구호를 함께 외쳤다. 앞서 진보 3당은 계엄 선포 다음날인 12월 4일 국회 앞에서 윤석열 체포 촉구 기자회견을 공동 주최하기도 했다.
체제전환운동 조직위원회의 미류 공동집행위원장은 결의대회 발언을 통해 "헌법은 우리의 권리장전이었다"며 시민들의 노동권, 평등권, 주거권, 생명권을 위협한 위헌적 대통령 윤석열을 규탄하고, 탄핵은 국회의 권한이 아닌 책무이자 투쟁의 완결이 아닌 헌법 존중의 출발선일 뿐임을 외쳤다. 미류 공동집행위원장은 이와 함께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되더라도 우리의 삶과 권리,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없는 나라를 앞으로도 만들어나갈 것임을 다짐했다. 결의대회 참석자들은 탄핵 부결 및 집회 해산 이후 오후 9시 30분 마무리집회를 가지고 향후 국면에서의 공동투쟁을 다시금 결의했다.
탄핵 이후에도, 광장은 계속되어야 한다
비록 첫 번째 탄핵소추안은 부결되었지만 급박한 정세는 지속되고, 대중운동 역시 물러나지 않을 것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지난 12월 9일부터 현재까지 전국적으로 매일 윤석열 탄핵·체포를 촉구하는 집회들이 열리고 있고, 대학가에서의 시국선언도 더욱 늘어나고 있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의 윤석열 퇴진을 위한 청소년 공동성명에는 약 5만여 명이 연명하기도 했다. 이런 대중운동의 힘을 바탕으로 민주당은 당장 돌아오는 14일(토) 국회에 탄핵소추안의 재상정을 예고했으며 국민의힘은 탄핵 찬반을 둘러싸고 분열하고 있다. 14일 탄핵이 가결될 가능성은 7일보다 훨씬 높아졌다.
그러나 모두가 알고 있듯이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했다는 것도, 심지어는 헌법재판소에서 가결되었다는 것도 최종적인 승리를 뜻하지는 않는다. 윤석열은 물러났지만, 윤석열을 만들어낸 체제는 그대로일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박근혜를 몰아내었던 촛불의 희망을 잃어버린 지 오래 된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도모>는 지난 12월 2일 발표한 12월호 기획기사를 통해 윤석열 퇴진 운동을 둘러싼 당시 사회운동의 딜레마에 대해 분석한 바 있다. 결과적으로 그 당시 <도모>가 진단했던 모든 정세는 단 하루만에 180도 바뀌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윤석열 탄핵은 이제 모두에게 선택지가 아닌 상수가 되었고, 동시에 민주주의와 주권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경유해야만 하는 절차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남아 있는 선택지는 탄핵 이후의 국면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이다.
윤석열 이후의 사회가 촛불의 요구들을 전혀 현실화시키지 못했던 2017년의 재림이 될 것인지, 혹은 낡은 6공화국을 넘어선 새로운 체제의 마중물이 될 것인지는 지금 사회운동과 진보정치가 어떤 전략과 기획을 만들어내는지에 달려 있다. 또 하나의 윤석열이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 탄핵 이후에도 광장이 계속되어야만 하는 이유다. 지난 12월 7일 국회 앞의 경험은 거대한 대중운동이 갖는 힘을 온 세상에 보여 주었다. 이제는 탄핵과 퇴진을 넘어 윤석열을 만든 세상을 바꾸기 위해 그 힘을 이어가야만 한다.
이도영
전환 기관지 편집위원장.
아마추어 디자이너 일도 가끔 한다.
여전히 사회운동과 진보정치가 만들 다른 세상의 가능성을 믿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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