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동덕여대 투쟁, 지켜짐을 넘어선 마주침의 정치로
동덕여대 학생들의 거센 투쟁은 남녀공학 전환 논의를 잠정적으로 중단시켰지만, 여전히 그 불씨는 남아 있다. 오늘 우리는 동덕여대 투쟁의 의미, 더 나아가 '여자대학'의 사회적 의미를 무엇으로 볼 것인가?
들어가며
지난 11월 20일, 동덕여자대학교(이하 동덕여대) 운동장에서는 전체학생총회가 열렸다. 총회에는 재학생의 약 30%이자 정족수의 3배를 넘긴 1,973명이 참여했고, 기권 2인을 제외한 참가자 전원이 '공학 전환 반대'에 투표했다. 이에 동덕여대 처장단은 21일 '남녀공학 전환 논의를 잠정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동덕여대 본부 측이 일방적으로 공학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지 10여일만이며, 공학 전환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본관 점거와 수업 거부가 시작된 지 열흘 만에 일어난 일이다.
동덕여대 총학생회는 공학 전환이라는 본부 측의 입장이 완전히 철회될 때까지 본관 점거를 해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명확히 밝혔다. 학생들이 요구하고 있는 '공학화 반대' 안에는 학내 민주주의와 학생자치의 실현이라는 요구사항이 함께 담겨 있다. 실제로 동덕여대 학생들은 20일 학생총회에서 '총장 직선제'를 함께 의결하기도 했다. 그러나 본부 측은 여전히 이를 전혀 존중하지 않고 있다.
동덕여대 본부 측은 학생들의 투쟁을 "비정상적 상황과 폭력 사태"로 규정하며 강경하게 맞서고 있다. 11월 25일, 동덕여대 본부는 총장 명의의 입장문을 통해 20일 열린 학생총회를 '정상적인 절차로 보기 어렵다'고 밝히며 "학내 정상화를 위하여 폭력사태, 교육권 침해, 시설 훼손 및 불법 점거에 대해 법률적 조치를 포함한 모든 대응을 단호히 실행하여 학교를 지켜나가겠다"고 말했다. "불법적인 본관 점거와 시위를 중단하고, 민주적인 대화와 토론 과정을 거쳐 공학전환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 총장 입장문의 골자다.
그러나 이러한 동덕여대 본부 측의 입장에 대해서는 수많은 의문이 남는다. 학교의 비민주적 졸속 행정에 대응하는 '정상적인 절차'란 도대체 무엇인가. 학생들의 목소리가 지워진 '학내 정상화'란 무엇이며, 학교가 원하는 '민주적인 대화와 토론 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인가. 그 외에도 많은 질문에 대한 답이 공백으로 남은 채인 지금, 우리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먼저 이와 같은 질문을 제안한다. 2024년 현재, 대학을 움직이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여자대학을 향한 혐오에 어떻게 맞서야 하는가. 대학, 그리고 여자대학은 어떠한 공간이어야 하는가. 이 모든 의제를 종합적으로 담고 있는 동덕여대 투쟁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대학의 총체적 위기 속, 동덕여대 투쟁이 갖는 의미
지난 11월 초, 경북 경산에 위치한 대구대학교에서는 장례식이 열렸다. 특별한 점이 있다면, 장례의 대상이 사람이 아닌 '학과' 였다는 점이다. 대구대학교는 사회학과를 비롯한 6개 학과를 '한계학과'로 설정하고, 2025년부터 해당 학과들의 신입생 모집을 중단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사회학과 학생들이 대학의 일방적인 구조조정에 항의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행사를 개최한 것이다. 2030년에는 대구대학교 사회학과가 최종적으로 문을 닫고, 보건재활이나 경찰행정 등 일명 '취업이 잘 되는 과'들이 그 빈 자리를 채울 예정이다.
학령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현 시대, '대학 강제 구조조정'의 모습은 낯설지 않다. '벚꽃이 피는 순으로 대학이 문을 닫는다' 는 일명 '벚꽃 엔딩 설이 등장한 지도 수 년이 지났다. 동덕여대 본부 측이 내세우는 공학화의 주된 이유 또한 "학령 인구의 감소에 따른 신입생 확보의 어려움"이다. 2024년 현재 모든 대학은 위태롭다. 일명 지방대학 '문사철(인문, 역사, 철학)'에서 사회과학대학으로, 사회과학대학에서 수도권 인문대학으로, 그리고 여자대학으로 구조조정의 표적이 계속해서 바뀌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자대학을 공학대학으로 전환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미봉책일 뿐인 주장을 그 누가 신뢰할 수 있을까. 결국은 끝없는 '폭탄 돌리기'가 될 뿐이다. 대학이 직면한 위기는 구조적 문제다. 여자대학을 없애고 인문대학을 구조조정하는 방식으로는 절대 해결될 수 없다. 소비자주의를 넘어, 대학 교육의 공공성에 대한 근본적 고민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앞으로 대학 본부의 일방적 구조조정에 의한 갈등은 더더욱 증폭될 것이다.
특히 일방적 대학 구조조정의 과정에서 학생들의 목소리가 빠져 있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큰 문제다. 동덕여대 본부 측은 충분한 근거와 설득의 시도 없이 학생들의 투쟁을 '폭력시위'로 규정하고 있다. 이는 노동탄압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을 공격하고 '벌금 폭탄'으로 응징하는 정부 및 자본의 방식과 매우 닮아 있다. 동덕여대 학생들의 투쟁은 학생사회의 동력이 그 어느 때보다 약해지고 주체들이 파편화되어 있는 2024년 현재, 대학의 비민주성과 구조조정 이슈를 다시금 가시화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폭력 투쟁? 우리는 '혐오 투쟁'에 맞서야 한다
일부 언론은 학생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대신 혐오를 부추기는 데 앞장섰다. "학생들이 공학 전환에 왜 반대하는가", "여자대학은 어떠한 이유로 필요한가"를 묻는 대신 '폭력 시위'와 '젠더 갈등'이라는 프레임으로 투쟁을 보도하기에 급급했다. 언론의 이런 보도 양태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지하철 시위, 후술할 트랜스젠더 A씨의 숙명여대 입학 포기 사건 등의 사례에서도 이미 관찰되어 왔다. 사회문제의 본질에 대한 날카로운 관찰과 보도라는 저널리즘의 원칙 대신, 소수자와 약자의 저항과 투쟁을 '폭력'으로 호도하거나 '갈등'으로 격하하는 쉬운 방식을 택한 것이다.
보수 정치인들도 혐오에 가세했다.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4호선 타는 서민을 볼모 삼아 뜻을 관철하려는 행위가 비문명인 것처럼 동덕여대 폭력 사태에서 다른 학생들의 수업권과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는 그저 비문명일 뿐"이라 언급했다. 1대학의 공공성과 여자대학을 향한 혐오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갑작스레 동덕여대를 소환해 훈수를 두는 이유는 뻔하다. 이준석 의원이 정치적 위기를 마주했을 때마다 '소수자 공격' 으로 지지자들을 결집시키려는 시도를 해 온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 의원은 지난 2020년 숙명여대에서 트랜스젠더 여성 A씨가 입학을 포기한 사건을 두고도 "페미니스트들은 (트랜스젠더 여성의 여자대학 입학을) 안 된다고 한다. 하지만 저는 당연히 입학할 수 있다고 본다" 2며 페미니즘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트랜스젠더 인권을 ‘선택적 옹호’하기도 했다.
이에 더해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남녀공학으로 전환을 하든 안 하든, 어떤 경우에도 ‘폭력’이 용납될 수는 없"다며, "이미 벌어진 재산상의 피해 등에 대해서 '폭력 사태 주동자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남녀공학으로 전환을 하든 안 하든' 이라는 전제부터가 이미 왜 동덕여대 학생들의 절대다수가 공학 전환을 반대하는지, 그 근본적 이유는 애써 무시한 채 '폭력'이라는 현상으로 문제를 호도하려는 태도라는 것은 확실하다. 그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는 공허한 말에 불과한 것이다. 정치 본연의 역할을 외면한 채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는 '혐오 투쟁'을 우리는 명확히 바라보아야 하며, 이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
환영할 움직임도 분명히 존재한다. 서울여대, 성신여대를 비롯한 주요 여자대학의 구성원들은 동덕여대 투쟁의 시작부터 꾸준히 연대의 목소리를 내 왔다. 그리고 11월 28일, 한국여성의전화를 비롯한 총 67개의 여성단체는 동덕여대 본부 측에 책임이 있으며, 학생들의 문제제기와 요구를 겸허히 수용해야 한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여전히 혐오의 파도에 비하면 연대의 목소리는 멀리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문제의 원인을 분명히 짚고, 동덕여대 학생들을 향한 혐오에 반대하며 투쟁에 힘을 보태는 더 많은 목소리가 필요하다. 진보정당과 사회운동진영의 연대 역시 동덕여대 캠퍼스 안으로 확산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여성'과 '여성 공간'을 어떤 방식으로 정의해야 하는가
"사치스러운 된장녀", "결혼 잘 하려고 여대에 갔다", "다소곳한 여대생"에서부터 "여대 출신은 거른다", "어차피 곧 없어질 학교", "페미 소굴"까지. 여자대학에 대한 낙인과 차별적 시선은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러한 사회적 낙인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여자대학 구성원들은 오랜 기간 투쟁해 왔으며 그 투쟁은 현재진행형이다. 만연한 여대 혐오는 역설적으로 여자대학이 왜 여전히 필요한 공간인지를 설명해 준다. 다만 단순히 '성별이 분리된 공간'으로서가 아닌 불평등과 차별, 배제와 억압에 맞서는 다원주의적 학문과 실천의 공간으로서 여자대학의 역할을 넓혀갈 필요성은 분명히 존재한다.
'분리' 와 '보호'가 여자대학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의 핵심적 논거가 되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지난 2020년 1월, 언론을 통해 트랜스젠더 여성 A씨가 정시모집 전형으로 숙명여자대학교 법학부에 합격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A씨는 법적 성별정정 절차를 마쳤고 신입학전형에서 요구하는 조건들을 충족했다. 그러나 소위 '지정성별(출생 시 해석된 성별)' 남성이 여자대학에 입학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여론이 숙명여대 안팎에서 거세게 확산됐다. A씨를 대상으로 한 아주 구체적인 괴롭힘 논의가 커뮤니티에서 진행되기도 했다. 이에 A씨는 입학을 포기했다. (이 과정에서 상술했듯이 이준석 등의 정치인이 페미니즘을 공격하기 위해 A씨의 인권을 선택적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 편집자 주)
당시 A씨의 입학을 반대한 이들이 내세운 주된 논리는 '안전'이었다. '생물학적 여성들의 공간으로서 안전이 담보되는 공간인 여자대학에 이질적 존재가 침입하는 것은 안전을 위협하는 일' 이라는 것이다. 굳이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오랜 시간 여자대학 캠퍼스가 여성혐오 범죄의 표적이 되어 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에 학교는 보안을 강화하고 출입문을 폐쇄하는 방식으로 조치를 취했다. 여성혐오 범죄를 당장 뿌리뽑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회적 배경 하에 '문을 걸어잠그는' 방식이 학교와 학생들이 당시 취할 수 있었던 최선의 방법이었다는 점에는 동의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걸어잠근 문 안에서도, 밖에서도 학생들은 여전히 불안을 안고 지내야 했다.
학내외에서 A씨와 연대한 이들은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여자대학 학생으로서, 여성혐오의 '이중적 피해자'가 되어 온 학교 구성원들이 ‘안전한 공간’을 요구하는 것은 무엇보다 존중되어야 하며,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트랜스젠더를 물리적 공간에서 배제한다 하여 그 안전이 담보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까. 안전하고 평등한 공동체란 무엇인가. 구성원들의 '단일한' 정체성은 곧 안전으로 이어지는가. '안전한 여성 공간'이라는 경계에, 우리는 오히려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많은 이들의 애씀에도 불구하고, 2020년 당시 숙명여대에서는 이와 같은 논의가 풍부하게 이루어지지 못했다. 학교 본부는 침묵했고, 사회적으로는 트랜스젠더에 대한 '찬성/반대' 구도만이 대두되었으며, A씨는 학교 구성원으로서 교정을 밟을 수 없었고 많은 학생들에게는 상처가 남았다.
지켜짐을 넘어선 마주침의 정치로 가자
같은 아픔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여자대학이 어떤 공간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더 폭넓은 논의를 이어가야 한다. 여자대학의 창립 이념은 교육의 장에서 철저히 배제되어 왔던 소수자들에게 교육권을 보장하고 공간을 제공하고자 한 데 있다. 우리의 목표는 차별을 해소하고 평등을 추구하는 여자대학의 창립 이념을 계승하는 것이어야 한다. 페미니즘 운동의 역사는 '여성에 대한 개념을 계속 변화시켜온 역사이고, 여성에게 부가되어온 의미와 역할을 해체하고 새로운 여성 범주를 확대하며 재구성해온 역사'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하다. 그 과정에서 학내 구성원들에게 민주성과 자주성이 보장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3
'단일한 여성 정체성'을 내세우며 '누가 진정한 여성인지'를 가려내고자 하는 시도는 결국 배제를 낳는다. '다름'과 '이질성'이 당당하게 드러날 수 있는 공간, 그리고 그것이 토론될 수 있는 공간이 진정 안전함에 가까운 공간으로 이름붙여질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이 안전인지, 누구의 안전인지, 무엇이 안전을 구성하는지 더더욱 뜨겁고 치열하게 질문하는 것이 우리에게 남은 과제다. 우리는 결국 여자대학의 울타리를 넘어선 더더욱 넓은 공간으로의 해방을 원하는 것이므로. 4
우리에게는 아직 많은 질문과, 그 질문에 답해야 할 책임이 남아 있다. 부족한 글이지만, 질문에 대한 고민을 시작할 수 있는 작은 단초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여자대학은 지켜져야 하는 공간이지만, 동시에 여자대학이 단지 '지켜짐의 대상'이 아니라 이질적인 존재들의 마주침과 뒤섞임, 흔들림이 이루어지는 공론장이자 시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여자대학에서 뜨거운 20대를 보낸 졸업생의 한 사람으로서, 동덕여대 학생들의 투쟁에 온 힘을 담아 연대의 마음을 보낸다. 5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도모>의 편집 방향 및 전환의 입장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장태린
정의당 전국위원. 숙명여자대학교를 졸업했고, 서울 마포구를 기반으로 활동한다.
발 딛고 있는 곳의 이야기를 쓴다.
각주
- https://www.facebook.com/share/19k7zwz7em/ [본문으로]
- “‘재벌보다 여성, 전장연만 왜 세게 비판하나’ 묻자 이준석 답은”, 미디어오늘, 2022.04.02. https://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3315 [본문으로]
- “‘생물학적 구분’이 연대의 토대? 페미니즘은 왜 ‘여성’의 범주를 묻는가”, 경향신문, 2020. 04. 25.,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41982.html [본문으로]
- 제람 외, <19호실로부터>, 위즈덤하우스, 2023. [본문으로]
- 숙명여자대학교 제2회 인권주간 ‘변주’ 캐치프레이즈에서 따옴.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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