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기사] 907 기후정의행진: 함께한 기억들, 남겨진 질문들
역대 최대 규모로 치러진 907 기후정의행진이 마무리된 지 어느덧 1달이 되어 간다. 이제는 9월의 연례행사가 되어 버린 기후정의행진, 올해 기후정의행진은 한국의 사회운동에 무엇을 남겼을까?
지난 9월 7일, 강남대로 일대에서 ‘기후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자’ 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2024년 907 기후정의행진이 진행되었다. 3만여 명의 사람들의 행진에 함께했는데, 이는 지금까지의 기후정의행진 중 역대 최대 규모였다. 참가자들은 핵발전부터 신공항, 국립공원 케이블카 등으로 대표되는 윤석열 정부의 퇴행적 기후환경정책을 비판하고, 기후위기와 기후재난, 불평등과 부정의에 맞서는 정의로운 전환과 기후정의를 요구하며 다섯 시간 가까이 행진을 진행했다.
연대의 기억들
이번 행진에는 기후정의와 관련된 다양한 주체들이 함께 모여 각자의 목소리를 내며 연대의 장을 넓혀나갔다. 행진 전 사전집회에서는 강한수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 신지연 전국여성농민회 충청남도연합 사무처장, 마리암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시민사회긴급행동 활동가 등 다양한 단위의 활동가들이 단상에 올라 기후 부정의가 모두의 투쟁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 설명했다. 가덕도 신공항 반대, 금강보 재가동 반대, 홍천 송전탑 철거, 울산 탈핵운동 등 기후 부정의의 현장에서 투쟁 중인 당사자들도 각자의 경험을 공유하며 연대의 인사를 건냈다. 기후위기 속 동물들의 권리에 대해 말한 혜리 새벽이생츄어리 활동가, 역사적인 기후위기 한법소원 승소를 이끌어 낸 윤현정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의 발언 역시 많은 호응을 얻었다. 참가자들은 공동선언문을 낭독한 후 구글코리아,쿠팡, 포스코 등 기후위기를 가속화하는 ‘기후악당’ 기업의 본사들이 위치한 길을 따라 행진을 진행했다.
많은 참가자들은 지역별로 진행된 여러 사전행동들에 대해 호평했다. 지역별로 포스터와 팜플렛 등이 배치되어 있는 거점공간을 마련하고, 이를 바탕으로 포스터 공동행동과 릴레이 참가선언, 토론회 등 함께 기후정의에 대해 고민하고 실천할 수 있는 다양한 자리를 마련했다.서울 이외 대전, 부산, 제주, 포항, 통영, 지리산 등 6곳에서 지역별 행진이 개최되기도 했다. 위와 같은 활동들이 각 지역과 부문의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활동에 기여했다는 평가였다.
청년학생 단위의 활발한 참가 또한 눈에 띄었다. 올해 기후정의행진 대학참가단에는 각 대학별 동아리와 인권ㆍ소수자 공식기구부터 여러 연합동아리까지 총 31개 단위가 결합했다. 행진 당일에는 500명 가까이 되는 인원이 참가했는데, 이는 역대 기후정의행진 최대 규모였다. 집회 이전에 진행된 기자회견과 포스터 공동행동 및 대학별 간담회에도 많은 인원들이 몰렸으며, 연세대와 서울대, 이화여대, 고려대에서 진행한 다이인(die-in) 퍼포먼스는 여러 언론들에 보도되기도 했다. 올해 기후정의행진에 처음 참가한 동국대 맑스철학연구회 소속 허정원은 "집회 당일 날씨가 더워 힘들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인원들과 기후위기라는 큰 하나의 주제로부터 시작하여 서로 연대하고 각자의 문제인식을 공유할 수 있는 행진이었다"며, "체제의 가속도를, 생산력이라는 이름의 희생을 바꾸기 위해 목소리 내는 자리였던 게 좋았다"는 소감을 남겼다.
남겨진 질문들
그러나 이번 기후정의행진은 그 추진 과정에서 많은 논쟁을 야기하기도 했다. 우선 지난 22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한 비례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에 참가했던 정당들을 조직위에 참여시킬지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가덕도 신공항과 설악산 케이블카 문제에서 보듯 명백한 반생태적 입장을 보이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한 위성정당에 참가한 것은 사실상의 ‘공동정범’이나 마찬가지이므로 배제가 당연하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2023년 기후정의행진 조직위원회는 같은 이유로 기본소득당의 조직위 참가를 배제했지만, 이번에는 기본소득당보다 훨씬 많은 당원을 가지고 다양한 현장에 결합한 진보당 역시 위성정당에 참가했기에 더 격렬한 논쟁이 일어났다. 이에 결국 '사회주의를 향한 전진'에 의해 해당 정당들을 조직위 참여 단위에서 제척하자는 안건이 회의에 정식으로 상정되기에 이르렀다.
플랫폼c, 인권운동사랑방 등의 단위들은 위성정당 참여 정당들을 제척하기보다는 연대의 범위를 넓히고 보다 많은 노력과 설득을 통해 이를 대중적 기후정의운동의 급진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진보당 제척 찬성파에서는 명목이 무엇이든 간에 이들 정당의 조직위 참가를 용인하는 일은 위성정당 참가에 면죄부를 주는 일이며, 이와 같은 일이 반복될 시에는 사회운동에 대한 민주당계 정치세력의 식민화가 가속화될 것이라 주장했다. 전환 역시 위성정당 참여 정당들의 제척에 동의하는 입장의 발언 및 표결을 진행했다. 진보당, 기본소득당의 조직위 제척을 지지한 정치학자이자 사회운동가 채효정은 SNS에 올린 글에서 이는 “진보당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위성정당 참여'라는 진보당의 '행위'에 대해, 반성과 책임을 촉구하는 사회운동의 경고이자 비판이며, 앞으로 이에 대한 기후정의운동의 원칙과 기준을 재확인 하자는 요청”이며, 이러한 조치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차후에는 “위성정당을 못하는 정당이 바보가 될 것이고, 나서서 절대 안 된다고 하는 사람들이 이상한 사람이 될 것”이라 비판했다.
결국 해당 정당들을 조직위 참여에서 배제하자는 안건은 찬성 24표, 반대 29표, 기권 19표로 조직위 회의에서 부결되었고, 두 정당은 행진에 자유롭게 참여하게 되었다. 그러나 찬성과 반대 사이의 표차가 불과 5표밖에 되지 않았으며 기권표 역시 19표나 되었던 만큼 이는 해당 논쟁이 대단히 치열하게 진행되었음을 여실히 보여 주는 결과였다.
다른 일부의 활동가들은 기후정의행진의 의제들이 일국중심적이고 인간중심적이라 지적하며 기후정의행진에 대한 보이콧을 촉구하기도 했다. 보이콧을 제안한 성북녹색당과 동물교회는 SNS에 공유된 성명과 카드뉴스에서 “내 몸이 부자 한국이라는 가해자의 위치임을 고백하는 것”, “어떻게 가난해질지의 문제, 그리고 빼앗고 있던 것을 어떻게 돌려줄지의 문제”에 집중하는 것이야말로 기후정의의 출발점이라고 말하며, “우리가 알고 있는 민족의 개념과, 국제적인 국가질서를 해체하지 않으면 기후와 생태의 학살을 막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들에 따르면, 기후위기에 대한 해결책으로 일국적 해법에 집중하는 기후정의행진의 세계관은 신제국주의적 사고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예컨대 단순 한국 내에서의 비건 식단 증가나 동물복지 식품 증가만으로는 비인간 동물에 대한 인간의 착취를 종식시키지도, 자본화되고 글로벌화된 현재의 농업체제 내에서 비서구 영세농민과 농업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문제를 건드리지도 못한 채, 그저 ‘환경을 생각하는 정의로운 제1세계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재생산할 뿐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행진 당일 현장에서 ‘정의로운 한국인’이 아닌 ‘정의롭지 못한 비동물 인간’의 모습에 주목해야 한다는 취지의 항의행동을 기획했지만,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현장에 있던 경찰에게 진압 및 강제 연행되었다. 해당 행동에 참가했던 동물권 활동가 노예주는 이후 개인 SNS에서 “보이콧은 ‘평화로운‘ 기후정의행진이 가진 한계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지, 행진의 정의로움을 다채롭게 해주는 도구가 아니다. 우리는 안전하지 않은 자리에서 함께하자 외쳤다"는 말로 보이콧에 참여했던 이유를 설명했다.
기후 '부정의' 없는 기후정의를 위해
생전 ‘아마존 열대우림의 수호자’ 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브라질의 환경운동가 치코 멘데스는 “계급투쟁 없는 환경운동은 정원 가꾸기일 뿐이다”라는 말을 통해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의식 없는 서구 주류 환경운동의 한계를 지적하며, 고무채취 노동자들을 위한 노동조합을 결성해 노동자들의 생계보장과 아마존 개발 반대를 함께 추진했다. ‘사회적 생태론’ 이라는 새로운 생태주의 사조를 주창한 미국의 아나키즘 사상가이자 사회운동가 머레이 북친은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심각한 생태파괴의 핵심에는 대부분 경제적, 인종적, 문화적, 성적 갈등이 있다”고 주장하며, “생태문제를 사회문제로부터 분리하거나 둘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경시하는 것은 점증하는 생태위기의 근원을 전반적으로 오도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지적했다.
이들의 말처럼 기후정의운동이 정말로 ‘정의’로우려면 이미 주류화된 기성사회의 ‘녹색’담론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는, ‘적색을 더한 녹색성장’ 수준을 넘어 인간지배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우리의 위치를 비판적으로 되돌아보고 이로부터의 총체적인 전환의 가능성을 숙고해야만 한다. 우리가 907 기후정의행진에 대한 긍정적인 기억들은 물론, 앞서 소개했던 논쟁적인 문제제기들 역시 외면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감옥 안에 단 하나의 영혼이라도 갇혀 있다면 나는 자유롭지 않다”고 말한 미국의 사회주의 정치인 유진 뎁스의 말을 빌려 말하자면, 지구상에 ‘기후 부정의’를 경험중인 존재가 단 하나라도 있다면, 우리의 기후정의운동은 미완성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원
동국대학교 맑스철학연구회 회장, 전환 경기 회원. 동국대학교와 고양시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넓고 멀리 보는 이론과 구체적인 공간에서의 실천을 겸비한 운동을 지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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