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기사] 윤석열 퇴진을 둘러싼 한국 사회운동의 딜레마
이른바 '명태균 게이트' 이후 대통령의 지지율은 10%대까지 추락했고 민주당과 유관단체들은 윤석열 퇴진 운동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왜인지 민주노총과 진보정당, 사회운동 세력의 목소리는 예년보다 한참 미약할 따름이다. 윤석열 퇴진이라는 쟁점을 그 누구도 회피할 수 없게 된 지금, 진보정치와 사회운동이 할 일은 무엇인가?
2024년 가을, 한국인들의 가장 많은 관심을 불러 모은 정치뉴스는 '명태균 게이트'였다. 지금 현재도 하루하루 쏟아지는 뉴스의 양이 너무 많아 따라가기 힘들 정도다. 처음 보도되었던 2022년 재보궐 선거와 22대 총선 공천개입은 물론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 윤석열-안철수 단일화, 용산 대통령실 이전,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파업 강경진압 등 윤석열 정부 출범 전후 주요 정치적 결정 상당수에 명태균의 입김이 있었음이 확인되었거나 의심받고 있다. 윤석열-김건희 대통령 부부는 물론 홍준표, 오세훈, 김진태, 나경원, 이준석 등 웬만한 주요 여권 정치인들의 이름이 명태균과 함께 오르내리고 있다. 이쯤 되면 윤석열 정부를 넘어 여당 국민의힘 등 한국 보수우익세력의 정당성 전체가 흔들리는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주요 보수 언론들이 경쟁하듯 각종 단독보도를 내놓는 건 물론이고 첫 의혹 제기 직후부터 사설 란을 통해 "구정물을 함께 뒤집어쓴 느낌" "나라가 무너질 일" 1과 같은 강한 언어로 관련 논란들에 대해 비판하는 이유일 것이다. 2
국민 여론은 이미 싸늘하다. 가뜩이나 민생 실패는 물론이고 채 상병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이나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논란 등으로 악화되어 있던 민심인데, 이번 논란으로 인해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논란 제기 이후 원래부터 낮은 편이던 윤석열 정부의 국정지지율은 10%대까지 추락하고야 말았다. 심지어 임기 절반을 이제야 막 넘긴 대통령에 대해 자진 하야해야 한다는 반응이 50%가 넘어가는 여론조사들 3까지 속속들이 나오고 있다. 이쯤 되면 이미 윤석열 대통령은 법리적 판단과 별개로 국민들로부터의 '심리적 탄핵'을 당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4
민주당이 앞서서 나가니, 사회운동이여 따르라?
작금의 상황에 대해, 한국이 마지막으로 비슷한 리더십 위기를 경험했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의 유사성을 부각하여 이야기하는 목소리들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당장 당시 우병우 민정수석 등 관련 인물들에 대한 각종 특종 보도로 박근혜 정권 몰락에 기여했던 조중동 등의 주류 보수 언론들부터 사설을 통해 "탄핵 국면이나 IMF 사태 같은 극단적인 상황 때나 나오는 수치" 5 "박 전 대통령의 전철을 밟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며 6민심 이탈로 인한 지지율 악화와 선을 긋기 위한 운을 띄우고 있다. 중도 성향의 언론인 <한국일보>의 경우에도 대학별로 잇따르는 교수와 연구자들의 시국선언에 대해 "박근혜 정부 말기를 연상케 한다"는 평가를 내림으로써 이에 힘을 실었다. 정말 2024년 대한민국의 현실은 2016년의 '데자뷔'인 걸까? 그렇다면 한국의 진보좌파 정치 7·사회운동은 8년 전에 그러했듯 대통령 퇴진운동에 적극 결합해 이를 가속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할까?
권위주의적이고 친자본적인 대통령이 측근의 무분별한 정치개입으로 위기에 놓였다는 사실만 놓고 보면 8년 전 당시와 지금의 현실에는 분명 유사한 측면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 표면적인 사실을 제외하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현재 '윤석열-김건희-명태균 게이트' 사이에는 무시하기 힘든 몇 가지 결정적인 차이들이 존재한다. 첫 번째는 기본 법리적인 문제의 차이이다. 현제 제시되는 의혹 중 경선 여론조작이나 재보궐 공천개입의 경우 윤석열이 대통령에 취임하기 이전에 발생한 것들이기에, 대통령 신분으로 행한 일의 잘잘못을 따르는 탄핵심판의 범주에는 해당되기 힘들다. 22대 총선 개입 문제의 경우 사실이라면 선거법 위반이 되지만, 박근혜 탄핵 심판 당시의 '최순실 태블릿' 과 같은 구체적인 물증이 나오지 않는다면 단순 관련자들 발언만으로는 유죄입증이 힘들 수도 있다. 박근혜 탄핵 심판 당시 헌법재판소가 대통령의 공천 개입을 인정하면서도 탄핵 사유로 인용하지는 않았던 것과 같이, 위법성 여부와 탄핵 사유로의 인정은 별개의 문제일 수 있다. 8
두 번째로는 보수우파 세력 내 세력구도의 차이가 존재한다. 박근혜 정부 당시 집권여당이던 새누리당에는 김무성 전 당대표와 유승민 전 원내대표 등 무게감 있는 비박 정치인들이 여럿 있었고, 이들의 역할에 힘입어 당시 새누리당 국회의원의 절반 가까이 되는 60여명이 탄핵 표결에 찬성표를 던져 국회에서 탄핵소추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반면 현재 여당인 국민의힘에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낮은 국민적 지지와는 별개로 이에 대한 유의미한 반대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의 한동훈 지도부가 김건희 여사 문제 등에서 윤석열 정부와 어느 정도 각을 세우려는 모양이지만, 특검법 발의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세우지 못하는 등 그 정도와 진정성에 대해 많은 이들의 의심을 받는 상황이다. 이런 식이면 현재로써는 탄핵 정족수를 넘기 위해 필요한 8명의 국민의힘 국회의원을 확보할 수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이미 탄핵을 통한 정치 헤게모니의 해체를 경험하면서 크게 데인 보수 유권자층의 탄핵 반대 정서가 매우 크다는 걸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세 번째로는 전반적인 정세구성의 차이가 존재한다. 박근혜 퇴진 운동이 진행되던 당시에는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의석수가 여당인 새누리당과 별반 차이가 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제3당인 국민의당 역시 교섭단체 지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6석의 정의당, 현재는 진보당 소속인 무소속 윤종오 의원과 김종훈 의원 등 진보정치 세력 역시 원내에 진입해 있었다. 민주당의 대선주자 역시 문재인, 안희정, 이재명, 박원순 등으로 다원화되어 있었다. 따라서 퇴진 운동 측은 집회 참여가 특정 정치세력에 대한 지지를 의미한다는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야권 지지층과 중도층은 물론 일부 여당 지지층까지 아우르는 광범위한 대중들을 광장으로 불러모을 수 있었다. 반면 현재는 민주당과 그 협력 정당의 의석수가 개헌저지선을 돌파하기 직전인 수준으로 압도적일 뿐더러, 그 내에서도 대권주자로 이재명을 대체할 인물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윤석열 퇴진 운동은 곧 '이재명·민주당 집권 운동' 이 될 수밖에 없고, 이는 이재명과 민주당을 신뢰하지 못하는 이들로 하여금 퇴진에 대한 지지와는 별개로 퇴진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머뭇거리게 만든다.
마지막으로는 퇴진 운동 내 진보좌파 정치사회운동 세력의 역할의 차이 문제가 있디. 박근혜 퇴진 운동은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이 주도했는데, 여기에는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국진보연대, 노동자연대, 사회진보연대, 사회변혁노동자당 등 정파를 아우른 다양한 사회운동 세력들이 참여했다. 이들은 2015년부터 박근혜 정권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던 민중총궐기의 경험을 통해 조직과 사기의 측면에서 모두 고무되어 있었으며, 이에 따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한 언론보도가 나온 직후부터 기만하게 움직이며 퇴진 운동을 주도할 수 있었다. 진보정당 역시 정의당이 원내정당 중 가장 먼저 박근혜 퇴진을 내세우는 등 정치권에서 퇴진 여론의 선두에 섰다. 오히려 민주당은 초기 거국중립내각 구성 등 다른 방안을 내세우며 퇴진 운동 측과 거리를 두었으며, 집회에 백만 명이 넘게 참여하는 등 여론이 겉잡을 수 없게 타오른 이후에야 퇴진 운동에 늦게 합류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직후 있었던 대선에서 정의당의 심상정 후보가 200만 표가 넘는 6.17%의 득표를 올렸다는 사실, 퇴진 운동 이후 여성과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조 가입이 대폭 증가했다는 사실 9 10은 이들 정치·사회운동이 일반 대중들에게도 퇴진 운동의 핵심주체로 인정받았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반면 2024년 현재는 정의당의 원외정당화와 진보당의 민주비례연합 합류 및 민주당에의 종속성 심화로 인해 원내에서 민주당과 독립적으로 정국을 주도할 정치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 민주노총으로 대표되는 사회운동 진영 역시 윤석열 정부의 탄압과 내부 정파 갈등, 윤석열 정부와 이재명 민주당의 속성에 대한 평가 등으로 그 세가 크게 꺾인 채 분열되어 있다. 이에 현재 윤석열 퇴진 운동은 진보당과 민주노총 등의 참여와는 별개로, 그 주도권을 원내 민주당계 정당들과 촛불행동 등의 민주당 관변 단체들에 완전히 빼앗긴 형국이다. 격주로 진행되는 윤석열 퇴진 집회에는 주최측 추산으로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모이고 있지만 이는 8년 전 박근혜 퇴진 운동 때의 인원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숫자이며, 정치권에 퇴진과 관련한 실질적인 압박을 주기에도 한참 모자란 수치다. 11
지난 11월 9일 있었던 전태일 열사 정신계승 전국노동자대회(이하 전국노동자대회)는 윤석열 퇴진운동과 관련하여 한국 사회운동이 겪고 있는 딜레마를 압축적으로 보여준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올해 전국노동자대회를 주최한 민주노총은 핵심 의제 중 하나로 윤석열 퇴진을 내세웠다. 본집회 연설회에서도 윤석열 퇴진과 관련된 내용의 발언들이 대부분을 차지했는데, 퇴진에 대한 공감여부와 별개로 주객이 전도된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사도록 하기에 충분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민주당과 촛불행동이 전국노동자대회의 공동주최 단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같은 장소에 퇴진집회를 연이여 신고해 대회 종료 이후 곧바로 같은 장소에서 집회를 진행하는 촌극이 진행되었다는 것인데, 당시 현장에 있던 조합원과 활동가들 중 이를 사전에 인지하고 있던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대오 후반부에서 경찰들에 맞서며 대오를 뚫던 현장 노동자들과 전장연 활동가들은 본집회 자리에 도착하기도 전에 민주당과 촛불행동의 윤석열 퇴진 집회 때문에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이야기에 쓴웃음을 지어야 했다.
지난 2016년 민주노총과 진보정당, 사회운동 세력은 민주당에의 의존 없이 '박근혜 퇴진 이후의 세상'을 함께 상상하자는 모토로 수많은 사람들을 끌어모았고, 결국 민주당조차 동참할 수밖에 없는 거리의 정세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비례위성정당 참여 정당에 대한 지지 철회를 거부했던 민주노총 현 양경수 지도부는 윤석열 퇴진 운동 국면에서조차 대체적으로 민주당의 대중 동원력에 대부분의 것들을 위임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비록 미약할지라도 '우리의 퇴진'이 무엇이 다른지를 먼저 규명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당계 정치세력과의 연대 아닌 연대를 통한 '쉬운 퇴진'을 선택한다면, 장기적으로 볼 때는 진보좌파의 의제로 더 많은 대중들의 공감을 얻는 것에도, 사회운동 내의 다양한 목소리들을 하나로 묶는 데에도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윤석열 퇴진을 대하는 우리의 기본 원칙들
정리해 보자. 박근혜 퇴진 여론이 폭발했던 2016년과 윤석열 퇴진 여론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2024년의 정서에는 그 외적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많은 차이점들이 존재한다. 과거에는 진보정당과 사회운동이 퇴진 여론에 불을 지피고 민주당계 정치 세력이 마지못해 뒤따랐지만, 현재는 반대로 제 진보 세력이 민주당 측이 주도하는 여론에 무력하게 끌려가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진보좌파 정치·사회운동은 어떤 자세를 유지해야 할까?
첫째, 사회운동이 더는 윤석열 퇴진이라는 의제를 회피할 수 없다는 현실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윤석열 정권의 스캔들에 대한 법리적 평가 이전에, 퇴진을 염원하는 국민 여론이 절반을 넘어가는 상황에서 이를 외면하는 건 윤석열의 실정에 고통받는 대중들에게 무책임한 당리당략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그 정도와 방향에 대해서는 각 조직이나 단위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퇴진여론 전반과 완전히 거리를 두는 건 책임 있는 운동 주체의 자세라고 볼 수 없다. 사회운동과 진보정치에게는 그들 스스로가 바라는 대중을 만들어내기 전까지는 원하는 대중을 선택할 권리가 없다.
둘째, 이와는 별개로 현재 퇴진 정국을 주도하는 민주당 및 그 유관 정치세력들에 대한 어떠한 환상도 품어서는 안 된다. 정리해고 합법화와 비정규직 악법 통과, 한미 FTA 추진 등 각종 신자유주의 경제정책들로 일관했던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민주당은 집권 전에는 진보적 사회운동 진영의 손을 빌려놓고 집권 후에는 정책적 우경화로 뒤통수를 치는 정치 행보를 지속해 왔다. 이는 박근혜 퇴진운동의 결과로 출범했던 문재인 정부도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박근혜 퇴진 비상국민행동 공동대표를 맡았으며 상대적으로 민주당계 정치세력에 대한 우호적인 자세로 잘 알려진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마저 "서민들의 삶에 변화를 주지 못했다" "노동자·농민·도시빈민 모두 ‘팽’당했다"며 인정했을 정도이다. 12
이는 현재 퇴진정국의 핵심 지도부에 있는 이재명 민주당 지도부 역시 조금도 다르지 않다. 심지어 집권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와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 과세 완화, 주 52시간 노동 예외 확대 등 강력한 정책적 우경화 노선을 걷고 있다. 설사 진보정당과 사회운동이 민주당의 '좌측 견인'을 위해 민주당과 손을 잡더라도, 민주당 주도 비례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에 참가를 신청했다가 각각 국가보안법 위반과 병역거부(로 위장한 성소수자 비토)를 구실로 후보직을 내려놓아야 했던 장진숙 진보당 공동대표와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13, 그들이 추구하는 '정상성'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언제나 토사구팽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윤석열 퇴진을 위해서는 민주당과의 '오월동주'가 불가피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라면 이 문제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보아야만 한다. 14
셋째, 윤석열 정권에 대한 퇴진 요구를 넘어 윤석열을 낳은 한국 사회 전반에 대한 구체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운동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박근혜 퇴진 운동을 통해 대통령 탄핵과 정권교체라는 소기의 목표를 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운동이 이후 정세의 대부분에서 철저히 무력한 위치에 놓여 있을 수밖에 없었던 데에는, 박근혜 이후 한국사회에 대한 보다 분명한 청사진과 실천계획 모두 결여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크게 작용했다. 그렇다 보니 퇴진 운동의 결과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국민들의 신망을 잃었을 때 대안적인 정치세력으로 인정받을 수 없었고, 결국 윤석열 정부의 탄생이라는 씁쓸한 결말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15이를 위해서는 단순 퇴진과 정권교체라는 정해진 공식의 반복을 넘어, 불평등과 착취에 기반한 한국 사회 전체를 변혁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윤석열 너머 한국 사회의 모습을 그려나가는 작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현재 한국 사회운동 일각에서 추진 중인 '체제전환운동' 16은 이를 위한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플랫폼c와 인권운동사랑방, 빈곤사회연대, 민달팽이유니온 등 40여 개 사회운동 단위가 함께하고 있는 체제전환운동 조직위원회는, 부문과 의제별로 분열해 있는 한국 사회운동을 '체제전환' 이라는 변혁적 가치 아래 하나로 모아 기성정치의 논리가 아닌 사회운동의 논리에 기반한 새로운 정치적 주체로의 도약을 목표로 하고 있다(전환 역시 체제전환운동 조직위원회의 출범 당시부터 함께하고 있다). 지난 2월에는 1일부터 3일까지 2박 3일의 일정으로 체제전환포럼을, 3월 23일에는 체제전환 정치대회를 열며 그 도약을 시작했다. 전국노동자대회가 있던 11월 9일에는 전태일 정신의 동시대적 의미를 되물으며 윤석열 퇴진 너머 체제전환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가자, 체제전환!' 집회를 주최하기도 했다. 17
다만 이러한 체제전환에 대한 요구가 대중적 요구로 자리잡고자 한다면 단순 여론 환기에 기반한 '공중전' 의 성격을 넘어, 지역과 현장에 뿌리내린 대중밀착형 운동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명분 측면에서 옳았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대중적 기반을 확보하지 못해 승기를 잡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간 진보정치와 사회운동의 사례들을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체제전환운동이 이러한 실패의 역사를 답습하지 않고 대중의 신뢰를 받는 유의미한 정치사회적 주체로 자리잡으려면, 그 의제와 실천 모두 구체화할 방식이 무엇일지 운동에 참여하는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 특히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대중운동인 민주노조운동 내부에서 현재의 주류적 퇴진 담론에 국한되지 않는 대안적 흐름을 만들어 내는 일은 필수적이다.
'방 바꾸기' 의 도돌이표를 넘어
"혁명은 안 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김수영 시인이 4.19 혁명의 좌절을 바라보며 쓴 시 <그 방을 생각하며> 의 유명한 첫 문장이다. 돌이켜 보면 한국 변혁운동의 역사는 이 문장의 재림을 반복해 온 역사나 다름없었다. 전두환 군부독재정권으로부터 민주화 개헌을 약속받은 이후에도 그 정치적 후계자인 노태우의 당선을 지켜봐야만 했던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역사가 그러했고, 대중항쟁을 통한 대통령의 탄핵이라는 역사를 만든 이후에도 5년 후 다시 정권을 국정농단 세력의 후계자에게 내줘야 했던 2016-17년 박근혜 퇴진운동의 기억이 그러했다. 그 과정에서 대중의 삶과 그에 밀접히 유관된 대다수의 의제들은 '방을 먼저 바꾸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논리로 항상 뒷전으로 밀려나거나 묻혀 왔다.
윤석열 정부가 끝나는 시점이 언제가 될지는 지금으로써 알 수 없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마무리되든, 윤석열 이후 한국 사회가 다시 '방 바꾸기의 역설'을 되풀이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체제변혁을 위한 진보정치와 사회운동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것은 물론 단지 윤석열 이후의 시점에 어떻게 세상을 바꿀 것인가만이 아니라, 윤석열 퇴진이라는 의제가 수면 위로 부상한 지금 이 쟁점을 회피하지 않으며 스스로의 역할을 재정립하는 작업을 포함한다.
김원
동국대학교 맑스철학연구회 회장, 전환 경기 회원. 동국대학교와 고양시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넓고 멀리 보는 이론과 구체적인 공간에서의 실천을 겸비한 운동을 지향한다.
각주
- 녹취록, 디올 백, 카톡 메시지… 다음엔 뭘까 겁난다 https://www.chosun.com/opinion/column/2024/10/17/D6IRCKNM2FHNXBN2URQWAXH3ME/ [본문으로]
- 대통령은 '패밀리 비즈니스'가 아니다 https://www.donga.com/news/Opinion/article/all/20241016/130233165/2 [본문으로]
- 데일리 오피니언 제601호(2024년 11월 1주) - 장래 정치 지도자 선호도, 분야별 정책 평가 https://www.gallup.co.kr/gallupdb/reportContent.asp?seqNo=1516 [본문으로]
- (정기여론조사)①윤, 20% 턱걸이…국민 73.9% "국정 부담 요인은 김건희"(종합) https://www.newstomato.com/ReadNews.aspx?no=1244480 [본문으로]
- 마침내 10%대까지, 국민 지지 없는 권력은 아무 일도 못 한다 https://www.chosun.com/opinion/editorial/2024/11/02/D7S7NCQWHFHN5N34ZNZKXIHKPE/ [본문으로]
- '여사 문제' 결단 안하면 정권 붕괴 순식간이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88986 [본문으로]
-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112815040000466 [본문으로]
- 윤 대통령 공천 개입 의혹, 처벌 가능한가? https://www.khan.co.kr/article/202410311711001 [본문으로]
- 모호하고 유동하는 거리 정치 https://m.khan.co.kr/article/202411281814001#c2b [본문으로]
- 민주노총 조합원 100만 시대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09264.html#cb [본문으로]
- 윤석열퇴진운동본부 https://xn--2q1b06oxla271a8pa69jgxs.com/introduce [본문으로]
- 민중공동행동 공동대표 박석운 “촛불주역들은 모두 ‘팽’ 당했다” https://m.khan.co.kr/article/201812300936011#c2b [본문으로]
- “배임죄 완화·배당소득 분리과세 공론화”…이재명 ‘친기업 우클릭’ https://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1168413.html [본문으로]
- 이언주, 장진숙, 임태훈... 민주당의 자가당착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33021.html [본문으로]
- 촛불 이후 5년의 후퇴, 앞으로 사회운동은 무엇을 해야 할까 https://platformc.kr/2022/02/five-years-since-candlelight/ [본문으로]
- https://www.gosystemchange.kr/ssch [본문으로]
- 윤석열 퇴진으로 모인 분노와 답답함을 세상을 바꾸는 체제전환 투쟁으로 https://platformc.kr/2024/11/go-system-change-movement/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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