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의 말(2025년 1월호): 2024년을 보내며
지난 10월 초 창간호부터 지금까지 약 세 편의 <도모> 뉴스레터를 발간해 왔습니다만, 창간호를 제외하고는 <편집장의 말>을 쓰는 것을 계속 빼먹어 왔습니다. 왜였을까요. 사실 작은 온라인 매체로 편집 및 교열, 디자인 작업 등을 대체로 혼자 하다 보니, 마감이 다가올 때마다 정신이 없어서 서문을 남기는 것까지 신경쓸 시간이 별로 없었다는 핑계를 대 봅니다. 하지만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해를 준비하는 지금은 무언가 한 마디를 남겨야 할 것 같아 노트북을 켰습니다. (다음 달에도 쓸 것이라는 보장은 못 하겠습니다 ^^;)
다사다난했던 2024년이 가고 벌써 새로운 해가 찾아옵니다. 여러분에게 2024년은 어떤 해였던가요? 대체로 <도모>를 애독해 주시는 분들은 저와 비슷한 관심사나 지향, 경험을 가진 분들일 것이라고 혼자 생각하면서, 지나가는 한 해에 대한 감상도 개인적인 내용들을 제외한다면 약간은 비슷하지 않을까 추측해 봅니다.
거대 양당에 대해 독자적인 모든 진보정당들이 20년 만에 처음으로 국회 의석 확보에 실패하고 원외정당이 되었다는 것은 진보정당 활동가를 자처해 온 저에게 꽤 큰 충격이었습니다. "선거는 끝났지만 진보정치와 사회운동이 끝난 것은 아니다"를 열심히 되뇌이며 마음을 다잡고자 했지만, 아무래도 붕 뜬 마음이 쉽게 잡히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대체로 "낡은 것은 사라지지만 새로운 것은 보이지 않는다"는 안토니오 그람시의 명언을 너무 쉽게 인용해 온 우리 활동가들의 비감(悲感), 멜랑콜리함은 또 얼마나 큰 오만이었던가요. 수명이 다해 가는 87년 체제의 한계와 새롭게 열리는 한국 사회의 가능성들을 총집편으로 보여 준 지난 한 달간의 여정은 활동가, 진보주의자, 좌파.. 무엇이라고 하든 스스로를 그런 것들로 자처하는 모든 사람에게 반성과 희망을 동시에 안겨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도모> 1월호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기사는 지난 1개월 동안 불타올랐던 광장의 열기를 좇는 기사들입니다. 특별기획 "여의도에서 남태령까지: 2024년 연말을 달군 퇴진의 불꽃"으로 묶인 기사들은 계엄 이후 처음으로 열린 12월 7일의 대규모 집회에서부터 감히 현 시대 우리 운동의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다 평가하고 싶은 남태령 투쟁까지, 운동의 주요한 궤적을 다시 한 번 짚어갑니다. 경제 면의 <내란 세력의 위선을 넘어, 제7공화국 경제헌법을 상상하자>에서는 내란 세력이 한국 경제에 끼친 막대한 손해를 구체적으로 짚으며 새로운 경제적 상상력을 펼치고자 노력합니다. 총 2부로 펴낸 후기 모음 <남태령의 사람들, 연대의 기억들>은 남태령 투쟁에 함께했던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모아냄으로써 해방과 연대의 공간이었던 그 때의 남태령을 재구성하고자 했습니다. 이번 달의 타이틀 기획기사인 <윤석열을 낳은 대한민국을 넘어라: 제7공화국 건설을 위한 한국 사회운동의 논의들>에서는 최근 화두로 오르고 있는 '개헌'이라는 정치적 명제를 통해 윤석열 너머의 사회를 함께 상상해 보고자 합니다.
계엄과 내란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인해 한국에서 크게 주목받지는 못한 이슈이지만, 2011년부터 얼마 전까지 무려 14년 동안 이어진 시리아 내전이 아사드 정부의 붕괴로 사실상 종결되었습니다. 일촉즉발의 전쟁위기로 다가가는 세계, 국제 면의 <시리아 내전, 정부군의 패망과 위선자들의 합창>은 세계의 관심사 밖으로 멀어진 2024년의 시리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담아냈습니다. 이외 거대한 저항의 시대 항상 함께했던 민중미술의 역사를 담은 <저항의 미술, 인간의 미술: 태동기>, 전환의 젊은 신임 집행위원장이 생각하는 2025년 진보정치를 담은 인터뷰 <전환 집행위원장 정재환에게 묻는 2025년의 전환과 진보정치>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정신없고 복잡한 상황들과 급박한 정치 일정은 다가오는 2025년에도 당분간 지속될 것 같아 보입니다. 내란수괴를 몰아내는 탄핵 절차는 현재진행형이고, 헌재에서 탄핵이 인용된 후에는 생각조차 못했던 조기 대선이 바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전환은 지난 12월 7일 성명 <윤석열 넘어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광장에 모이자>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성명에서 말하는 것처럼 윤석열은 분명히 우리가 넘어서야 할 현 체제의 최악의 현현(顯現)이지만, 윤석열만을 다른 누군가로 갈아치운다고 세상이 바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윤석열이 사라져도 윤석열을 낳은 체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음 대통령으로 가장 유력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벌써부터 금투세 폐지, 가상자산 과세 유예 등 자본을 위한 우경화 드라이브에 시동을 걸고 있습니다. 내란 사태로 심화된 경제위기 속에 다가올 거대한 불평등의 시대가 저는 두렵습니다. 이 글을 쓰기로부터 불과 며칠 전, 179명의 시민들이 제주항공 참사로 인해 또 한 번 목숨을 잃었습니다. 반복되는 사회적 참사가 만들어낸 '사고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우리는 도대체 언제쯤 벗어던질 수 있을까요. 윤석열을 끝낸다면 윤석열로 대표되는 불평등과 사회적 참사도 함께 끝날 수 있을까요. 슬프게도 그렇다고 쉽게 말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우리가 애써 열어낸 광장이 쉽게 닫혀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여의도에서 남태령까지의 한 달 동안, 자신 스스로를 조직해낸 위대한 시민들은 활동가들을 한참 앞서 운동을 선도하며 세상을 바꾸어 왔습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지켜낸 다음에도 광장이 닫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 정권교체를 넘어선 체제교체를 이뤄내기 위해서 진보정치와 사회운동의 역할은 지금 이 순간 다시 무엇보다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올해, 오늘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여전히 쉽게 보이지 않는 그 해법을 찾기 위해, 2025년에는 독자 여러분과 함께 더 치열하게 고민하는 <도모>가 되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이도영
전환 기관지 편집위원장이자 <도모> 편집장.
아마추어 디자이너 일도 가끔 한다.
여전히 사회운동과 진보정치가 만들 다른 세상의 가능성을 믿고자 한다.
'도모 편집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모 뉴스레터: 2025년 1월호 (제4호) (0) | 2025.01.02 |
---|---|
도모 뉴스레터: 2024년 12월호 (제3호) (0) | 2024.12.02 |
도모 뉴스레터: 2024년 11월호 (제2호) (0) | 2024.11.01 |
도모 뉴스레터: 2024년 10월호 (창간호) (0) | 2024.10.02 |
웹진 <도모> 창간 기념사 및 연대의 말 (0) | 2024.10.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