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세무사 김봉독의 경제 화젯거리 톺아보기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로 정치권이 연일 논란이다. 무엇을 알고, 무엇을 보아야 할까?
'이재명세(稅)'라는 밈(meme)을 아시나요?
최근 주요 보수 언론과 각종 커뮤니티에서는 금융투자소득세를 '이재명세'라고 부르며 비판하는 데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민주당은 "금투세가 처음 발의될 때 이재명은 국회의원도 아니었는데 왜 이재명세냐"며 금투세 대신 이재명을 보호하려 하는 중입니다. 이재명 대표 본인 역시 과거의 금투세 도입 찬성 입장을 뒤엎고 지난 9월 29일, "한국에서는 (금투세가) 아직 안 된다는 정서가 있다, 고려하여 조만간 입장을 정하겠다"는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금융투자소득세(이하 금투세)를 둘러싼 정치적 혼란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 시절 금투세를 추진했던 더불어민주당은 금투세 시행 시기가 다가옴에도 현재까지 입장을 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반면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은 금투세 폐지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금융투자소득세의 개념, 논란의 원인, 그리고 진보·좌파적 입장에서의 논의들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고자 합니다.
소득세법은 기본적으로 법에 적힌 종류의 소득에 대해서만 세금을 징수하고 있습니다. 세금을 내는 우리 입장에선 안타까울 수도 있지만, 소득세법엔 정말 대부분의 소득이 적혀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세법 공부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소득세법에 적히지 않은 소득 중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상장주식에 대한 매매차익'이 있었습니다. 즉, 코스피 시장 등 주식시장에 상장된 주식을 팔아 이익을 얻으면 그 소득에 대해서는 여태껏 세금을 물리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최근 '이재명세'로 불리고 있는 금융투자소득세는 이러한 이익 등을 소득세법에 열거해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소득세법에서는 상장되지 않은 주식을 팔아 이익을 보거나, 일정 퍼센트 이상을 가진 '대주주'가 주식을 팔아 얻는 이익에 대해서만 세금을 물렸습니다. 이런 차별적 과세로 인한 형평성 저해를 개선하고자 2019년 20대 국회에서 추경호 의원이 금융투자상품(주식, 채권 등)에 대해 세금을 물리는 범위를 확대하는 법안을 발의했으나, 20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민주당은 금투세를 추경호세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후 문재인 정부 자본시장 선진화 방안의 일환으로 금투세 시행이 더불어민주당과 야당의 합의로 2020년 12월 통과되었고, 2023년부터 시행될 예정이었습니다.
이후 대통령으로 당선된 윤석열과 여당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상황이 개인 투자자들에게 불리하다며 추이를 더 지켜보자는 명목으로 금투세 시행 2년 추가 유예를 주장했습니다. 민주당이 이에 동의하면서 시행 시기는 2025년으로 늦춰졌습니다. 그러나 이에 그치지 않고 윤석열과 국민의힘은 22대 총선을 앞두고 금투세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총선에서 참패했고, 이후 앞서 언급한 현재의 상황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개미(개인투자자를 이르는 말)들 중의 다수는 금투세 도입에 반발하고 있습니다. 근로소득만으로는 자산형성이 어려운 상황에서, 주식투자를 통한 자산증식 기회마저 제한된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이러한 정서를 반영하듯,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6월 17일 페이스북에 "요즘 청년들은 20~30년 월급을 모아도 아파트 한 채 마련이 힘들다. 많은 이들이 코인, 주식, 부동산에 '영끌'로 뛰어드는 상황에서 정부와 정치권이 이들에게 희망을 줘야 한다"며 금투세 폐지 찬성 입장을 밝혔습니다.
폐지보다는 온건해 보이지만, 금투세가 한국 시장에는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습니다. 안철수 의원의 주장에 따르면 금융투자소득세를 도입한 국가들은 미국이나 일본과 같은 금융 선진국들인 반면, 중국처럼 우리나라와 금융 수준이 비슷한 국가들은 우리처럼 거래세만 존재합니다. 이들은 금투세 도입 전에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기업의 투자가치가 낮게 평가되는 현상) 해소를 위한 조치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금투세를 낼 수 없는 서민들의 입장에서, 혹은 심지어 개미 투자자들에게도 사실 이러한 금투세 반대 주장은 현실과 동떨어진 주장입니다. 민주당 유동수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실제 금투세를 납부하는 연간 5,000만원 이상의 투자소득자는 1% 가량의 극소수 투자자들뿐입니다. 대다수의 노동자들은 유리지갑에도 월급에서 근로소득세를 꼬박꼬박 납부하며 기회비용을 지불하는데, 왜 소수 자산가들이 지출하는 금융투자소득만 예외가 되어야 할까요? 수많은 노동자들이 평생 노동으로 모은 돈을 주식에 투자해도, 금투세를 납부할 정도의 투자 소득을 얻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경제의 양 축인 노동과 자본이 공정한 대우를 받아야 특혜와 부당행위 없는 정의로운 사회가 될 것입니다.
또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가 먼저"라며 금투세가 시기상조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역시 정작 구체적인 대안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자기 이익만을 위한 전형적인 발목잡기 행태라는 의혹을 피할 수 없습니다. 진정 개미 투자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고 한국 금융시장을 선진화하려 했다면, 집단소송제 확대나 소수주주동의제를 통한 구시대적 황제경영 근절과 같이 기업 문화와 주식 시장의 실질적 공정화 방안을 제시했어야 하지 않을까요?
최근 일부 보수 성향 인터넷 커뮤니티들에서는 ‘미국이면 이런 세금이 생겼겠냐’는 말이 떠돌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첨단을 달리는 미국의 경우에도 ‘자본이득세’라는 이름으로 동일한 세금이 존재합니다. 심지어 5천만원 초과 이익에 대해서만 매기는 한국과 달리 모든 이익에 대해 세금을 물리고, 최고세율은 단기보유 주식의 경우 한국보다 높은 37%에 달합니다. 보수정당 소속으로 오랫동안 활동해 온 유승민 전 의원조차 2024년 9월 12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현재 소득세법상 유예된 금융투자소득세가 오히려 너무 관대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금투세가 "조세의 원칙, 정의, 공정성 차원에서 필요한 세금"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경제 분야 시민단체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소수 재벌일가 중심의 후진적 기업지배구조와 불공정하고 불투명한 자본시장에서 기인한 것이지, 아직 시행하지도 않은 금융투자소득세 때문이 아니다"라며 금투세 도입을 촉구했습니다.
새로운 세금을 도입하는 일은 납세자들의 큰 집단적 항의, 즉 조세 저항을 불러일으키는 일입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는 1977년 부가가치세 도입 시 격렬한 저항에 부딪혔고, 이는 부마항쟁의 도화선 중 하나가 되어 결과적으로 유신 정권의 몰락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일본에서도 소비세 도입으로 인한 국민의 반발이 1993년 자민당 정권 붕괴의 원인 중 하나가 되었고, 2012년 노다 요시히코 총리의 소비세 증세 추진은 큰 논란을 일으켜 당시 여당이던 민주당의 몰락을 초래해 민주당은 현재도 회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부가가치세는 지난해(2023년) 기준 국세 세수 중 22%인 73조 8천억 원으로, 복지 재원이나 통일 재원 등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세금이 되었습니다. 일본의 소비세 역시 천문학적인 국채 상환 부담 경감과 심각한 고령화에 대처할 유일한 방법으로 경제학계에서 꼽히고 있습니다. 심지어 금투세는 부가가치세처럼 모든 납세자들이 필연적으로 납부하는 세금조차 아닙니다. 일부 고액 투자자들의 수익이 감소하더라도, 투자자들의 조세 저항이 있더라도 더 나은 미래와 조세정의를 위해 필요한 개혁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금융투자소득세는 바로 그 필요한 개혁 중 하나입니다.
정의당은 올 7월 30일 서면 보도자료를 통해 "시대에 뒤떨어진 건 금투세가 아니라 윤석열 대통령"이라고 밝혔습니다. 또한 "고물가 고금리로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어려워지는 지금일수록 소득이 있는 곳에서 정확하게 세금을 걷고, 필요한 곳에 알차게 써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추경호가 '추경호세'의 폐지를 주장하고, 이재명이 '이재명세'를 놓고 갈팡질팡하는 사이, 필요한 개혁은 늦춰지고 정의는 무시당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노동자가 유리지갑을 통해 근로소득세를 꼬박꼬박 내지만 부유층은 투자수익에 세금을 내지 않는 불공정한 상황이 바뀌어야만 합니다. 조세정의를 실현하고, 조세체계를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춰 더 나은 복지와 사회를 만들어갈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금융투자소득세 도입은 이를 위한 첫 걸음입니다.
김봉독
공인회계사, 세무사. 현재 모 회계법인의 세무팀에서 일하고 있다.
<도모>에 "세무사 김봉독의 경제 화젯거리 톺아보기"를 정기 연재 중이다. 조세정의와 진보적 경제정책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세무사지만 여전히 세법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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