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세무사 김봉독의 경제 화젯거리 톺아보기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를 결국 폐지한 이재명과 윤석열, 이제는 상법 개정을 그 대안으로 내세우고 있다. 상법 개정안이 현재 갖는 의미와 한계는 무엇일까?
지난 11월 4일, 이른바 ‘이재명세’로 불리던 금융투자소득세가 결국 이재명 대표 자신에 의해 좌초됐습니다. ‘손가락으로 혁명’을 하겠다던 이재명 대표의 당이 국회 전체 의석의 2/3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정작 같은 당의 이전 정권에서 내놓은 개혁을 포기한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이후 이재명 대표는 금투세 폐지에 실망한 지지자들을 달랠 용도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을 꺼내들었습니다. 이에 앞서 윤석열 대통령 역시 올해 초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거의 같은 내용의 상법 개정안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윤석열 대통령은 이후 해당 개정안 제시를 철회했다: 편집부 주). 이는 현재보다 주주를 위한 기업문화를 만들어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기업의 투자가치가 낮게 평가되는 현상)를 해소하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오늘은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 어떤 한계가 있는지, 그리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우선 윤석열과 이재명이 바꾸겠다는 ‘상법’이 무슨 법인지에 대해서부터 알아보겠습니다. 상법이란 상거래와 기업의 법률 관계에 대해 규정한 법률로, 대한민국에서 상업을 통해 돈을 버는 모든 일의 기초를 규정한 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상행위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회사를 설립하고 해산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주주와 이사의 권리 및 의무는 어떤 것이 있는지 등을 세세하게 규율한 법입니다. 그리고 이 상법에서 말하는 '이사'는 회사를 대표하여 업무를 처리하도록 규정된 자입니다. (엄밀히 ‘임원’과는 다른 말이지만, 적어도 이 글에서 나오는 이사는 임원이라고 이해하시면 편합니다.)
이사는 회사에 대해 충실의무, 즉 회사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의무가 상법에 규정되어 있습니다. 이사가 회사가 아닌 오너 등 특정인의 이익만을 위할 경우에는 이 규정을 근거로 회사에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지난 2009년 삼성 에버랜드 경영승계 사건 판결에서 현행법상 주주에 대해서는 이런 충실의무와 배상책임이 없다고 해석한 바 있습니다. 이번 상법 개정안의 핵심은 이를 개선하고 확대해 주주의 이익을 보호할 수 있는 근거를 상법에 규정하겠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에는 기업의 주인은 오너, 즉 창립자의 핏줄이라는 인식이 팽배합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몇 년 전 물컵 갑질로 물의를 일으켰던 대한항공 조현민은 10살일 때 ‘대한항공은 우리 가족의 사유재산’이라는 말을 했다는 증언이 있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다른 재벌이 그렇듯 대한항공 주식 중 조양호 일가의 주식은 1%도 채 되지 않습니다. 단지 순환출자구조를 악용하여 지분을 훨씬 뛰어넘는 경영권을 행사해 왔을 뿐입니다. 결국 조양호는 소액주주들에 의해 2019년 대한항공 이사 자리에서 쫓겨나며 대한항공이 조씨 일가의 사유재산이 아님을 몸소 증명한 바 있습니다. 단순히 창립자의 핏줄이라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회사의 주인이라고 여겨야 한다면, 남양유업 창립자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갑질로 인해 주식을 잃은 홍원식 회장도 여전히 남양유업의 주인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대중의 시선에서 말이 되지 않음은 모두가 알고 있고, 대법원도 주식을 잃은 홍원식을 남양유업의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회사가 오너를 위해 소액주주에게 손해를 끼치는 세태를 바로잡고자 추진되는 것이, 이사가 회사뿐만 아니라 주주를 위해서도 책임을 다하도록 하는 상법 개정안입니다. 이미 이사들이 소액주주를 위해서도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냐고요?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에선 일반적으로 그렇지 못해 왔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물적 분할 후 상장입니다. 멀쩡히 주식시장에 상장되어 있는 회사의 핵심 사업부를 독립시켜 따로 상장해 기존 회사의 주가를 폭락시키는 경우가 최근 수도 없이 있어 왔습니다. 이렇게 주주에게 손해를 끼치는 일명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는 고전적 자본주의에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인데, 이런 상황이 빈번했다는 점에서 사실 우리 사회에서는 주주자본주의조차도 제대로 굴러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법원조차도 최근 박주민 의원실에 제출한 상법 개정안 검토 의견에서 "전체 주주의 이익이 침해되지 않도록 이사에게 주주에 대한 보호의무를 부과하려는 취지로서 그 입법 취지에 공감한다"는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이러한 상법 개정안은 세계적인 전례가 없는 법도 아닙니다. 세계 회사법을 선도하는 미국 델라웨어 주 회사법과 영국 회사법에서도 이사가 주주의 이익 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 규정되어 있고, 한국과 상법 체계가 가장 비슷한 일본도 최근 유권해석 등에서 주주를 위한 충실의무 강화를 담기 시작했습니다. 국내 법학계에서도 이상훈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이 “현재 상법에는 일반주주를 보호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근본적이고 분명한 해결책은 이사의 충실의무에 ‘주주의 비례적 이익’이라는 문구를 추가해 상법을 개정하는 것이다.”라며 상법 개정을 촉구한 바 있습니다. 학계와 시민사회가 먼저 나서서 상대적으로 선진적 기업문화를 지닌 국가들의 사법 제도 벤치마킹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1
그러나 재계는 중앙일보와 한국경제신문 등의 입을 빌려 현 상법 개정안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습니다. 재계가 상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이유는 주로 다음과 같습니다. 1) 사모펀드 등 약탈자본의 경영권 탈취로 인한 국부유출에 취약해지고, 2) 소송이 남발되어 기업인이 경영에 소극적으로 임하게 되며, 3)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회사 vs 주주’의 문제가 아니라 ‘지배주주 vs 소수주주’의 문제라는 것 입니다. 소송 남발 우려는 재계에서 연례행사처럼 읊는 엄살이라 할 수 있겠지만 2 , 실제로 론스타 등 사모펀드는 주주의 이름으로 수천억 원의 국부(國富)를 합법적으로 약탈해 갔고, 앞서 말씀드린 물적분할 등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는 분명 단순히 주주가 피해를 본 사례가 아니라 소수주주가 지배주주에게 피해를 본 사례였습니다.
재계와 자본가들의 '엄살'을 감안하더라도, 중앙일보와 한국경제신문의 문제제기 자체에는 분명 일리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상법 체계는 윤석열과 이재명의 제안보다 훨씬 더 개혁되어야만 합니다. '기업의 주인은 주주'라는 단순한 자본주의적 시각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기업은 모든 이해관계자를 위해 활동해야 한다'라는 시각을 가진 상법 체계가 필요합니다. 기업이 스스로만을 위하거나 주주만을 위한다고 해서 사회 후생이 증대되지는 않습니다. (이는 고전 경제학에서도 외부효과를 통해 증명된 바 있습니다.) 노동자와 함께 살고 지역 주민과도 상생하는 등, 모든 이해관계자와 함께할 때 진정으로 사회 후생이 증대됩니다.
조금 어색하다면 민주주의의 발전과 비슷하다고 생각해 보시면 됩니다. 정치권력의 핵심인 투표권은 한때 핏줄을 가진 자만의 것이었고 그 후에는 돈을 가진 자를 대상으로만 확대되었으나, 이제는 모두가 정치권력을 누리며 정치문화는 점점 덜 야만적으로 변해 왔습니다. 마찬가지로 덜 야만적인 기업문화를 위해 기업의 영향을 받는 모두가 경제권력을 누려야 합니다. 단순히 핏줄이 기업을 소유한 구시대적 기업문화가 아닌, 혹은 여전히 주주의 이름으로 약탈이 정당화될 수 있는 기업문화가 아닌, 기업 활동에 영향을 받는 모든 이해관계자가 경제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업문화를 위해 새로운 상법 체계가 필요합니다.
지난 제22대 총선에서 녹색정의당은 경제 공약 중 하나로 회사를 설립할 때 기업의 정관에 주주뿐 아니라 협력업체, 노동자, 소비자, 지역공동체 등 ‘이해관계자 모두의 이익’을 위해 기업활동을 함을 명시하도록 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운 바 있습니다. 기업의 정관은 기업의 성격을 규정하는 근본 규칙으로, 상법보다도 우선순위로 기업에 적용됩니다. 이처럼 상법만을 개정하는 것보다 더욱 강력한 개혁을, 더 넓은 이해관계자를 대상으로 실행해야 합니다. 이는 일각에서 우려하는 현 상법 개정안의 한계를 극복하고, 지금 윤석열과 이재명이 외치는 상법 개정안보다 더 넓은 범위에서 많은 서민들의 권익을 보장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기업 역시도 다시 새로운 환경에서 도전할 차례입니다. 단순히 '글로벌 스탠다드'만을 되뇌이며 해외의 기준에만 맞출 것이 아니라, 모든 이해관계자가 기업을 매개체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윤석열·이재명식의 상법 개정안을 넘어 이해관계자 모두의 이익을 위해 기업활동을 하도록 하는 총체적 상법 체계 개혁이 필요합니다. 기업의 모든 이해관계자를 보호하고, 기업이 진짜 상생을 위해 도전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합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재명 대표의 생각과는 달리, 상법 체계 개정은 절대로 금투세의 대체재가 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이런 방식의 나눠먹기식, 지지층 달래기용 정치로는 절대로 서민과 소액 투자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새로운 경제구조를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 폭락과 각종 논란에도 2016년 촛불집회와 달리 시민들이 거리에 나서길 주저하는 이유 역시 똑같습니다. 단순히 '금투세 대신 상법 정도는 개정해 줄게' 같은 식이라면, 대통령이 하야해도 세상은 그리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기 때문입니다. 상법 개정은 금투세의 '보완재'입니다. 보다 강력한 금융투자소득세 시행과, 보다 강력한 상법 개정이 필요합니다.
김봉독
공인회계사, 세무사. 현재 모 회계법인의 세무팀에서 일하고 있다.
<도모>에 "세무사 김봉독의 경제 화젯거리 톺아보기"를 정기 연재 중이다. 조세정의와 진보적 경제정책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세무사지만 여전히 세법은 어렵다.
각주
- 주주 보호하는 상법, 해외에선 찾아볼 수 없다고? 비즈워치, 2022.11.25. https://news.bizwatch.co.kr/article/market/2022/11/23/0013 [본문으로]
-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반대 이제 끝내야, 한겨레, 2024.06.02.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43121.html#cb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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