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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네 번째 춘천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 이효성을 만나다

by Domoleft 2024. 10. 31.

[인터뷰] 네 번째 춘천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 이효성을 만나다

강원 지역 유일의 퀴어문화축제, 제4회 '춘천퀴어문화축제 소양강퀴어'가 지난 10월 19일 춘천 낙원문화공원에서 개최되었다. 지역에서 퀴어문화축제를 4년 동안 계속한다는 것, 지역사회와 함께 성소수자 운동을 이어나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전환 회원이기도 한 이효성 춘천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이 네 번째의 춘천퀴어문화축제를 마치고 <도모>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도모>와 인터뷰하고 있는 이효성.

 

-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춘천에서 활동하고 있는 전환 회원 이효성입니다. 춘천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조직위원이고요, 얼마 전인 10월 말까지 정의당 강원특별자치도당 사무처장으로 일해 왔습니다.

 

 

- 강원도당 사무처장으로 오랫동안 일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선거가 마무리된 지도 벌써 6개월 가까이 되어 갑니다. 이번 총선에서 녹색정의당 비례대표 전략명부 후보로 출마하셨는데, 짧게 소회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힘들지 않은 때가 없었지만 이번엔 유독 더 힘든 선거였던 것 같아요. 강원도에는 지역구 국회의석이 8석 배정되어 있습니다. 정의당 강원도당은 총선 때마다 그래도 1명씩은 후보를 내었는데요, 이번 총선에서는 한 명도 나오지를 못했습니다. 기후·생태 관련 의제가 부상해야 하는 매우 중요한 시기에 난개발로 인한 환경파괴를 겪고 있는 강원도에서 후보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아쉽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특히나 녹색정의당으로 임하는 선거에서는 더욱 그러하겠지요. 지역구 후보는 없지만, 비례로라도 등록을 해서 강원도에 선거 흐름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중앙당과 도당의 요청이 있었고, 저 개인적으로도 처장 활동을 하면서 강원지역을 향한 변화의 메시지를 내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후보등록을 했습니다.

 

가장 아쉬운 점은 많은 도민분의 지지를 얻지 못한 것이고요, 기억에 남는 점은 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강원도 지역 곳곳을 다닐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또 강원녹색당 활동가분들과 선거를 함께 치른 것도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선거는 끝났지만 지금도 종종 만나면서 즐겁게 소통하고 있습니다.

제22대 총선 녹색정의당 비례대표 후보(12번)로 출마한 이효성.

 

- 춘천퀴어문화축제 소양강퀴어가 올해로 벌써 4회를 맞았습니다. 올해 행사는 어떠셨나요? 간단한 평가를 부탁드립니다!

 

사실 올해 저희 조직위원들이 축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이 지쳐 있었습니다. 상근 조직위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적은 인원이 매년 쉬지 않고 축제를 진행하다 보니 여러 가지 면에서 부침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아니 그래서 더 분명하게 느낀 것은, ‘축제는 참여자분들이 만들어주시는 거구나’ 하는 거였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부스 참여가 있었고 후원도 축제를 치를 만큼 모자라지 않게 들어왔으며, 그 밖에도 많은 관심과 연대의 손길이 있었습니다. 이런 마음들이 조직위원을 다시 힘 날 수 있게 했습니다. 정말 감사한 일이지요.

 

이번 축제는 “퀴어가 뿌리내렸네!”라는 주제로 진행했는데요, 춘천에 사는 퀴어가 지역사회에 잘 뿌리내릴 수 있도록 지역사회의 변화를 유도하고, 또 저희 축제도 지역사회 안에서 굳건히 뿌리내리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말입니다. 조직위는 춘천 내 시민사회단체 11곳과 함께 ‘소양강퀴어연대회의’ 라는 연대체를 꾸려 축제를 함께 준비하는데요, 이번에도 연대회의의 큰 도움이 있었습니다. 조직위는 이번 축제의 핵심 키워드를 ‘연대’로 잡았습니다. ‘퀴어마블’ 이라는 프로그램을 배치해, 참여자들이 소양강퀴어연대회의 부스를 충분히 경험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을 초청해 전쟁의 참상을 겪고 있는 팔레스타인 민중과 춘천퀴어의 연대 흐름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지역사회에 잘 뿌리내리고, 지역으로, 또 국제적으로 연대하는 기획이 잘 구현된 행사였다고 생각합니다.

제4회 춘천퀴어문화축제 소양강퀴어 포스터. 출처: 춘천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 매년 행사를 준비하느라 고생이 많으신데요, 춘천퀴어문화축제가 시작될 때부터 함께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맨 처음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저는 제주에서 살다가 춘천에 6년 전 이주했습니다. 제주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가진 좋은 기억이 있어서 춘천에도 퀴어문화축제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소양강처녀상 앞을 지나갈 때마다 저 상에 무지개 빔을 곡 한번 쏘고 싶었지요. 이주 2년 차 어느 여름에 기자회견장에서 만난 녹색당 한 활동가께서 춘천에서 퀴어문화축제를 해보면 어떻겠냐는 말씀을 건네주셨습니다. 나와 같은 생각이 있는 사람을 만나 너무나도 반가웠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 서로 바쁜 탓이었는지 일을 더 진행하지는 못했습니다. 반년쯤 더 지나고 마음의 준비가 되었을 때 녹색당 활동가분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때의 제안을 기억하고 있지만, 춘천에 온 지가 얼마 되지 않아 아는 사람이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녹색당 활동가께서 함께할 분들을 모아주셨습니다. 그렇게 2021년 2월 2일 춘천의 어느 카페에서 4명이 첫 모임을 했습니다. 지금은 10명의 조직위원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건 제 관점에서의 시작에 대한 기억입니다. 다른 조직위원분들도 저마다 시작에 대한 각기 다른 기억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처럼 모두가 과거의 어느 때에 퀴퍼를 꿈꾸기 시작했을 테지요. 이런 꿈들이 2021년 햇살 좋은 어느 날에 우연 같은 필연으로, 또는 필연 같은 우연으로 마주쳤다고 하는 설명이 저에게는 시작에 대한 가장 정확한 이해입니다.

2024년 춘천퀴어문화축제 행진. 출처: 춘천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 지역에서 퀴어문화축제를 준비하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도 많으실 것 같습니다. 보통 행사를 준비할 때 가장 어려운 지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까요?

 

가장 어려운 것은 축제를 함께 준비하는 사람들과 호흡을 맞춰나가는 일입니다. 축제를 만들어가는 동력은 물질적인 보상에 있지 않습니다. 저와 조직위원, 소양강퀴어연대회의, 또 스태프분들 모두 축제의 미션인 성소수자를 포함한 모든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실현해나간다는 데에서 의미를 찾고 움직이거든요. 그런데 실제로 일을 하다 보면 기획에서 홍보에서 그 외 다양한 실무에서 함께 꿈을 꾸는 이들과 이견, 갈등이 생겨날 수 있고 실무가 점점 많아지면서 과부하가 걸려 지쳐버릴 수도 있습니다. 재미도 하나 없고요. 함께 축제를 준비하는 이들로부터 상처를 주거나 받을 수도 있습니다. 갈등과 아픔이 반복되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여기에서 지금 무얼 하고 있나?’ 싶을 때가 있지요. 우리 안의 갈등을 조율하고 해결해 나가는 과정은 참 어렵습니다.

 

 

- 반대로 가장 보람찼던 기억에 대해서도 궁금합니다.

 

앞서 말한 갈등의 과정을 누군가를 배제함 없이 구성원 모두가 우리 모두의 문제로 받아안고 피하지 않고 서로의 결을 살피면서 함께 계속 고민하고 돌보면서 나아가고자 노력할 때, 그리하여 떨어진 사기와 좋지 않은 분위기를 긍정적인 에너지로 바꿔낼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이 보람은 우리의 축제, 그리고 축제를 준비하는 이들을 아껴주시는 주변의 많은 연대자, 참여자분들의 관심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힘든 과정을 겪었지만 그래도 서로를 돌보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고, 무엇보다 주변에 계신 분들, 또 참여자분들의 힘찬 응원과 연대의 에너지를 받아 치른 축제는 다른 어느 때보다 더 큰 기쁨과 보람을 줍니다. 올해 축제준비가 제게 그리 수월하게 다가오진 않았지만, 그래서 더 큰 보람과 기쁨을 느꼈던 축제였습니다.

2024년 춘천퀴어문화축제 현장요원으로 일하고 있는 이효성. 출처: 춘천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 최근 기업이나 제국주의 국가의 '핑크워싱(Pinkwashing: 성소수자 인권 개념을 상업적, 자본주의 및 제국주의적으로 이용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이 운동사회 내에 많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지역에서 퀴어문화축제를 조직하시는 입장에서 이 문제에 대해 어떤 고민을 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퀴어문화축제는 사회운동을 일으키는 강력한 도구이자 그 자체로 인권축제입니다. 기업과 제국주의의 핑크워싱은 단호히 반대해야 할 것입니다. 다만, 핑크워싱을 하는 단체라 할지라도 우리 축제에 단순 참여자로 참여하고자 할 때 그 참여를 막기는 어렵습니다. 축제는 최대한의 개방성을 가져야 하고, 반대 피켓을 든 혐오세력 외에는 축제 참여자를 검열할 수 없고 검열해서도 안 됩니다. 그런데 조직위가 축제를 기획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사회운동이자 인권축제로서, 핑크워싱을 하는 단체가 우리의 기획, 프로그램 안에서 설 자리를 갖게 해서는 안 됩니다.

 

춘천퀴어문화축제는 매년 부스신청을 받을 때 이번 축제에서 조직위가 의도하는 방향을 실현하기 위해 이 방향에 부합하는 한 단체를 선정해 초청합니다. 우리가 초청하는 것이기에 당연히 부스 참여비를 받지 않습니다. 이번에는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을 초청했습니다. 그리고 퍼레이드 중간에 춘천의 보수세력이 가장 활발하게 세를 과시하는 팔호광장 교차로, 미국 성조기가 펄럭이는 그곳에서 팔레스타인과 퀴어의 강한 연대를 보여주는 메시지를 낭독해 주시고 팔레스타인 깃발을 흔들어주실 것을 요청했습니다. 팔레스타인긴급행동은 우리의 요청에 기꺼이 응해주셨고, 심지어는 후원금도 주셨습니다. 팔호광장 교차로에서 팔레스타인 깃발과 무지개 깃발을 동시에 휘날린 기억을 잊을 수 없습니다. 기업과 국가가 자신들의 폭력을 감추는 포장지로 우리를 이용하는 것에 분노합니다.

팔레스타인 깃발이 휘날리는 춘천퀴어문화축제 현장. 출처: 춘천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 앞으로 춘천퀴어문화축제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정량적인 목표든, 내용적인 목표든 꼭 이루고 싶은 것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춘천퀴어문화축제의 미션은 ‘성소수자를 포함한 모든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실현하기 위해 안전하고 차별없는 춘천공동체를 만든다’입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네 가지 비전은, ‘1년에 한 번 축제를 개최하는 우리, 성소수자 및 사회적 약자의 인권에 대해 공부하는 우리,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실현하는 조직과 연대하는 우리, 안전하고 차별없는 공동체를 먼저 실천하는 우리’입니다. 이 미션과 비전을 춘천에서 꾸준하게 실현해가고 싶습니다.

 

 

- 타 지역에서도 퀴어문화축제 개최를 목표로 삼거나, 이미 열심히 조직하고 계시는 지역 활동가 분들이 많습니다. 4회차를 맞은 춘천퀴어문화축제를 대표해서 타 지역의 성소수자 활동가들에게 짧은 연대의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성소수자 인권 실현의 토양이 척박한 지역사회에서 퀴어문화축제를 만들어가는 동지들께 존경과 연대의 인사를 드립니다. 어려운 일인 만큼 이를 현실로 만들어냈을 때의 보람과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동지들과 함께 이 대한민국 땅 전체를 차별과 혐오 없는 무지갯빛으로 물들이고 싶습니다. 동지들께서 가시는 길에, 하시는 일에 관심 가지고 함께하겠습니다!

 

 

- 마지막으로, 앞으로 본인의 활동 계획이나 전망이 궁금합니다.

 

얼마 전에 정의당 강원도당 사무처장을 그만두었는데요, 이제 뭐 할 거냐는 질문을 요즘 많이 받습니다. 저도 뭘 할까 생각을 한참 해봤는데 답이 잘 나오지 않더라고요. 솔직히 전망이 잘 보이지 않고, 그러니까 계획도 잘 서지 않는 것 같아요. 당분간은 조금 쉬면서 그동안 돌보지 못했던 일들을 천천히 하려고 합니다. 이사도 하고, 아이와 함께 여행도 다니고, 또 바쁘다는 핑계로 만나지 못했던 분들도 만나고 싶습니다. 하던 일을 멈추고 조금 다른 환경에서 다른 방식으로 지내다 보면 뭔가 또 떠오르는 게 있겠지요!

 

 

- 감사합니다. 활동가 이효성과 춘천퀴어문화축제의 내일을 <도모>도 응원합니다!


이도영

전환 기관지 편집위원장.

아마추어 디자이너 일도 가끔 한다.

여전히 사회운동과 진보정치가 만들 다른 세상의 가능성을 믿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