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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회 일반

12월 3일 밤에 대한 한 군인의 기억

by Domoleft 2025. 2. 2.

[사회] 12월 3일 밤에 대한 한 군인의 기억

12월 3일 밤, 생활관에서 잠 못 이루고 대기하던 수많은 병사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부당한 명령을 수동적으로 긍정하는 것은 과연 군대만의 문제인가? <도모>에 글을 보내 온 현역 육군 장병의 기억을 통해 불법적이고 부당한 비상계엄이 한국 군대와 사회에 시사하는 것들을 되짚어 본다.


12월 3일 당시 군용차를 몸으로 막아서는 시민. 출처: 워싱턴포스트

 

지난 12.3 내란 사태 이후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조직 중 하나는 군이다. 군이 비상계엄의 실행에 있어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고, 무장한 군인들이 시내 한복판에 등장했다는 것만으로도 시민들에게 공포감을 심어 줬기 때문이다. 어쩌다 군이 이렇게 되었을까? 국가를 방위해야 할 군이 어째서 헌정질서를 위협하는 존재가 되었을까? 이런 의문이 드는 와중에 비상계엄의 중심에 놓였던 군 조직 구성원의 생각을 기록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이 글을 쓰게 되었다.

 

필자는 진보정당과 사회운동에 소소하게 관여하다가 입대해 현재 군 생활 중인 육군 모 기계화부대 소속의 현역 군인이다. 비상계엄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부대 소속도 아니고, 관련 분야의 전문가도 아니기 때문에 50만 구성원이 있는 군의 극히 일부분만을 다루고 있을 수도 있다. 크게 영양가가 없는 글이더라도 독자 분들이 갖고 계신 고민을 발전시키는 데에 미약하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에 이 글을 기고한다.


12월 3일, 22시 23분

12월 3일 밤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윤석열. 출처: KTV

 

늦은 밤,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병사들은 야간근무자들을 제외하면 22시부터 취침 시간이었고, 간부들 또한 당직근무자를 빼고는 모두 퇴근했을 시각이었다. 갑작스러운 계엄 선포로 부대의 경계태세는 격상되어 경계근무 투입 인원이 증강되었고 모든 간부들이 급하게 출근했다. 이 과정에서 간부들이 생활관에서 취침 중인 인원들을 깨워 상황을 설명하는 등 혼란스러운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렇듯 급하게 각자의 위치에 투입되었지만, 전혀 준비되지 않은 계엄 속에서 막상 일선 부대원들이 따로 할 일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저 뉴스를 예의주시하며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지켜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도대체 이 상황이 현실이 맞는 것인지 믿기 힘들어했다. '정치적 중립'을 무엇보다 강조하는 군 조직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속된 말로 "대통령 미친 거 아니야?"라는 반응이 간부와 병사를 막론하고 자연스럽게 오갔다. 그 순간 계엄을 정상적이라고 인식한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01시 01분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를 의결했고, 이어서 대통령이 계엄 해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부대원들도 다행이라며 안도하면서도, 초유의 비상계엄이었기에 다시 무슨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며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12월 4일, 06시 30분

국회 경내에서 철수하는 계엄군. 출처: MBC

 

아침이 밝고 비상계엄은 해제되었지만 여전히 부대에는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었다. 경계태세 격상은 이후 몇 주가 지나도록 유지되었다. 평소에는 생활관 TV에서 뉴스가 나올 때 무슨 뉴스냐며 채널을 돌리거나 당연한 듯이 아이돌 뮤직비디오를 틀던 병사들도, 이후 몇 주간은 뉴스 채널을 붙잡고 계엄 이후의 정치적 상황 변화를 지켜보고 있었다.

뉴스를 보더라도 아무래도 같은 군인에게 눈길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저 사람은 어느 부대 소속일까, 저 사람은 무슨 생각으로 저기에 나왔을까, 저 사람도 참 안 됐다 등의 반응이 주를 이뤘다. 그리고 투입된 병사들의 처벌 가능성에 대한 뉴스를 보자 처벌을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분개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렇게 분개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우리 스스로도 그 명령을 거부할 자신이 없었다는 것이다.

나는 계엄 당일에 계엄 실행과는 거리가 먼 단순 부대 방호 근무에 투입되었지만, 솔직히 내가 국회로 보내졌다고 해도 그걸 거부했을 자신이 없다. 일단 타라는 말에 차를 타고, 어디 가냐는 질문에 국회라는 답을 듣고, 그저 당황하는 것 외에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싶다. 도대체 우리는 왜 명령을 거부할 자신이 없을까? 그렇다면 그 군인들은 누가 보아도 상식적이지 않은 계엄 실행에 왜 참여했을까?


군은 부화수행을 용인하는 사회의 결과다

최근 뉴스에 '부화수행(附和隨行)'이라는 생소한 단어가 자주 보인다. 부화수행의 사전적 정의는 '줏대 없이 남의 주장에 따라 움직임'을 뜻하는 것인데, 계엄에 소극적으로 동조하거나 실행에 옮긴 군 지휘관들을 가리키는 단어로 뉴스에 등장하고 있다.

군복무 중인 현역 병사로서 이 단어가 아주 적절하게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한국 사회에서 이 '부화수행'이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조직이 군이 아닐까 싶다. 군에서는 심지어 때로 부화수행이 미덕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설사 납득하기 어려운 지시가 내려오더라도, 일단 이를 이행한 뒤에 제한사항이 발생하면 그때서야 보고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군 밖에서 볼 때는 '도대체 저런 쓸데없는 짓을 왜 하는 거지?', '그런데 저런 일이 가능하다고?' 싶은 일들이 군에서는 모두 가능한 것도 이 때문이다.

'부화수행(附和隨行)' 출처: KBS


군에서 이 작업을 왜 하냐고 물어보면 가장 많이 돌아왔던 대답 중 하나는 “몰라? 이런 쓸데없는 짓은 왜 하냐”였다. 그런데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다들 주어진 지시에 참 잘 따랐다.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다보면 이 일을 왜 하는지 굳이 궁금해 하지 않는 것이 곧 미덕이 된다. 나는 그저 시키니까 할 뿐이다. 대신 나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니, 후과는 지휘관이 알아서 책임질 것이다. 이것이 곧 부화수행 아닌가.

나는 계엄 당시 국회와 선관위에 투입되었던 군인들과는 여러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짐작만 할 뿐이지만 이런 문화가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보기에는 어려울 것 같다. 부화수행도 일상이 되면 무뎌지기 마련이다. 계엄이라는 초유의 사건이기에, 조금은 망설였겠지만 이미 많은 비상식적인 명령에도 따라왔기 때문에 계엄 투입 지시를 따르는 허들도 조금 낮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물론 부화수행이라는 이유로 이들의 행동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국회와 선관위에 가서 국회의원과 공무원들을 끌어내고 체포하라는 것은 당연하게도 정당하지 못한 명령이고, 군형법 제44조에서도 역시 "상관의 '정당한 명령'에 반항하거나 복종하지 아니한 사람"은 처벌됨을 규정함으로써 부당한 명령을 거부할 수 있음을 간접적으로나마 명시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그들을 문책하거나 처벌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고, 처벌의 범위와 정도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겠지만 필수불가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항명과 집단항명에 대한 처벌을 규정한 군형법 제44조~45조


다만 분명히 짚고 넘어가고 싶은 점은 부화수행이 군대만의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이다. 형태는 다르지만 이는 한국 사회, 자본주의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기업의 오너가 횡령할 때 그 돈을 집행한 직원은 없었을까? 동료가 갑질을 당할 때 이를 묵인한 사람은 없었을까? 먹고사니즘이라는 이름 하에 비상식적인 일에 눈 감아본 적 없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니, 애초에 이 계엄의 출발점에서 정부부처 수장, 국무위원이라는 자들이 했던 모든 일들이 부화수행 아닌가.

이런 사회인데, 우리가 어떻게 부화수행하지 않는 군대를 기대할 수 있을까? 군대도 결국 사회의 부분이다. 한국군은 한국사회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 군 조직만 어떻게 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반성해야 할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반성은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민주주의를 확장하자는 주장으로 이어져야 한다.


양심의 자유, 역사를 직시하는 교육·알고 거부할 권리의 제도적 보장에서부터

민주주의를 확장하자는 말은 너무 포괄적이다. 그러면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계엄을 계기로 한다면 '양심의 자유'에서 시작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계엄에 투입된 군인들을 보면서 양심을 지키며 산다는 것은 참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다. 양심을 지킨다는 것에는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정보와 그 후과를 감당할 수 있는 용기가 모두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양심에 따라 판단할 수 있을까. 양심을 지키기 위해서는 평소에 그에 맞는 교육, 그리고 투명한 정보공개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대한민국 국군이 사병들에게 행하는 정신전력교육은 현재도 지극히 단편적이다. 한미동맹의 중요성은 가르치지만 베트남 전쟁 당시 한·미 군인들의 민간인 학살은 가르치지 않고, 민주주의를 지키는 군인임을 교육하지만 비상계엄과 군부독재, 5.18의 흑역사는 가르치지 않는다. 또한 이미 말했듯이 대한민국 군인들의 대다수는 자신이 하는 임무의 이유와 본질을 파악하지도 못하는 조건에 놓여 있다.

베트남 전쟁 당시 국군의 민간인 학살로 가족을 잃은 생존자들의 국회 기자회견. 출처: 서울신문

 

많은 부화수행은 결국 무지의 베일 뒤에서 초래되곤 한다. 그 날 현장에 있던 군인들이 평소에 국군의 흑역사를 되짚는 교육을 통해 결코 반복되어서는 안 될 선례로부터 헌정질서와 문민통제의 중요성을 제대로 교육받고, 자신이 수행을 요구받은 임무(계엄 해제 의결 방해)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았더라도 그렇게 순순히 동참했을까? 그렇지는 않았으리라고 본다.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은 부당한 이첩지시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직위해제와 항명죄 기소까지 온갖 고난을 겪어야 했다. 항명죄는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었지만, 군은 여전히 그의 복직을 허하지 않고 있다. 군인만이 아니다. 양심을 지키기 위해 내부고발을 했던 수많은 사람들은 모두 어떻게 되었나. 대다수가 따돌림, 협박, 고소고발을 당하고 원직복직을 하지 못한 채 살고 있다. 이런 엄혹한 현실에서 양심을 지키는 용기 있는 선택을 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양심의 자유도 이를 지키기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비밀주의를 타파하고 투명한 정보공개를 당연시하는 '알 권리'의 제도적 수립, 부당한 명령과 지시를 거부할 수 있는 '거부할 권리'의 명문화 등이 대표적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군대에도 사회에도 양심에 반하여 비상식적인 지시에 시달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런 작은 지시들이 모이고 모여 '게이트'가 되고, '계엄'이 된다. 양심을 지키지 못한 개인의 책임은, 양심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사회의 책임이기도 하다. 계엄과 게이트 없는 세상의 출발점은 양심을 지킬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1심 공판 당시 기자회견을 갖는 박정훈 대령. 출처: 매일노동뉴스


김상병

현역 육군 장병이다.
진보정치와 사회운동에 관여해 왔고, 현재는 경기도 모처에 암약 중이다.
겸손, 진지, 성실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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