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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말

도모 11월 기획기사에 대한 후기와 의문

by Domoleft 2024. 12. 2.

[독자의 말] 도모에 게시된 기획기사에 대한 후기와 의문

민족 내부의 특수관계를 부정하는 것은 대체 어떤 지점에서 평화공존의 가능성을 높여 주는가?

<도모>는 '독자의 말' 코너를 통해 매월 도모를 애독해 주시는 독자들의 피드백을 지면에 싣고자 합니다. 이번 호에는 지난 11월호에 게시된 기획기사 <두 개의 한국: 평화공존을 가로막는 '목적론적 통일주의'>에 대한 김현근(목성돼지) 님의 비판적 후기를 게시합니다. 주요 쟁점에 대한 다양한 토론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편집부)


도모에 게시된 기획기사 <"두 개의 한국: 평화공존을 가로막는 '목적론적 통일주의'>를 흥미롭게 읽었다. 기사의 결론인 ‘목적론적 통일주의’를 경계해야 하고 통일은 반전평화라는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 중 하나라는 말에는 당연히 백 번 찬성하지만, 사실 기사의 전반적인 내용은 그걸 넘어 통일을 추구해야 할 목표에서 삭제하고, 진보정치가 ‘민족 내부의 특수관계’라는 관계설정을 부정하자는 것에 가깝다. 그 지점에서는 납득이 어렵다. 그래서 거칠게나마 기사에 대한 후기와 의문 정도만 남겨보고자 한다. 반박기사라고 이름 붙이기는 민망하지만 관련한 토론을 약간이나마 풍성하게 해주는 재료가 되었으면 한다.


통일을 추구하지 않는 평화공존은 가능한가?

남과 북이 갈라져 사는 이유가 평양냉면에 식초를 뿌려먹을지에 대한 취향 차이 같은 문제라면 굳이 통일 없이도 평화공존하는 것이 가능하다. 기사 내용처럼 통일을 추구하지 않는 게 평화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남과 북의 분단선은 단순한 국경선이 아니라 냉전질서에서 가장 약한 단층선 중 하나로서 그어졌고, 여전히 그렇다.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은 한반도 문제가 근본적으로 세계적인 냉전 질서의 일부라는 걸 다시 한 번 보여줬다. 그게 한반도 평화를 논의하기 위한 전제이다. 그리고 세계적인 냉전질서가 여전한 상황에서 남북이 개별행위자로서 각자 동맹을 맺는 상태가 이어진다는 것은 이번 북한의 파병처럼 각국의 이익과 미·중, 러의 이익을 위해 언제건 다시 마그마가 분출할 수 있는 상태가 이어진다는 것이다.

 

대만해협이 세계대전의 최대 뇌관이 된 것은 베이징과 타이베이가 하나의 중국을 포기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대만이 중국 포위를 위한 미국의 교두보이자,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위한 거점이기 때문이다. 데탕트 이후 조금씩이라도 개선되던 양안관계가 신냉전과 함께 파탄 나고 있는 것은 비슷한 입지의 한반도에서 냉전질서 위에서 '현 상태를 유지하는' 평화공존이 얼마나 난망한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평화통일 담론의 핵심은 결국 한반도에 존재하는 냉전의 단층선을 지워버리는 것을 추구하지 않고서는 한반도 평화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대립하던 국가들이 평화공존을 추구하기 위한 전제는 같은 동맹을 형성하는 것뿐이었다. 그 점에서 우선은 남과 북이 통일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연대체를 형성하여 항구적인 평화를 추구하자는 구상이 바로 통일방안의 내용인 남북연합이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진영 간 충돌의 공간이라는 입지를 적극적으로 거부하여 평화지대를 형성함으로써 세계평화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진보정치가 지금껏 주장해 오던 중립국 통일방안의 함의이다. 그렇다면 과연 통일이라는 목표 추구 없이 조중·조러 동맹과 한미 동맹의 관성을 깨고 한반도 평화지대를 추구할 동력이 있는가? 민족 내부의 특수관계라는 주장보다 남북, 중러미 모두에게 남북간의 평화동맹 필요성을 설득할 명분과 논리는 존재하는가?

 

이러한 상황에서 통일의 포기는 단지 한반도가 현재와 같은 화약고 상태로 고착되는 것을 의미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 않다면 우선 통일 없이 어떤 방식과 로드맵으로 한반도가 친미동맹과 반미동맹의 싸움터가 되지 않을 수 있는지 제시되는 것이 먼저여야 한다.


통일과 평화공존은 상반되는가?

통일의 추구는 현 단계에서의 평화공존을 추구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통일에 대한 주장이 '딴 건 모르겠고 통일'만 외쳐왔던 것도 아니고, 앞서 간단히 적은 남북연합과 같이 현 시점에서의 평화공존이 장기적인 통일의 추구를 돕고, 장기적인 통일의 추구가 현 시점에서의 평화공존을 도울 수 있는 방안들과 함께 주장되어 왔다. 단적으로 남북 간을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로 규정한 것은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였고, 그 내용은 그 자체로 현 단계의 평화 공존을 위한 내용이었다. 즉, 나는 남북간의 관계를 민족 내부의 특수관계로 규정하는 것은 평화공존을 방해한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민족 내부의 특수관계라는 것은 유엔 남북한 동시가입에 따른 관계 규정이었고, 오히려 이는 평화공존을 위하여 필수적인 교통과 경제를 연결하고 대화를 진행해야 한다는 강력한 당위를 만들어주었다.

 

기사에서는 "신냉전적 프레임을 넘어 한반도의 문제를 동아시아 전역의 평화라는 확장된 차원에서 상상하기 위해서는 특수관계라는 틀을 넘어서 대등한 행위자로서의 상호 인정이 필수적으로 선행될 수밖에 없다"라고 이야기하지만, 1991년 이후 정부와 평화운동, 진보정치가 말해왔던 통일과 민족 내부의 특수관계 규정이 현시점에서 남북한이 실질적인 대등한 행위자로서 존재하고 서로의 존재를 상호인정함에 있어 대체 무엇을 방해하였는지 궁금하다.

 

남북이 평화협정을 못 체결하고 있는 건 서로를 민족 내부의 특수관계로 보고 있기 때문이 아니고, 서로 왕래도 못하고 있는 것 역시 서로를 민족 내부의 특수관계로 보고 있기 때문이 아니며, 현재 서로의 직통연락망까지 끊긴 것 또한 민족 내부의 특수관계로 보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그렇기에 1991년과는 상황이 많이 달라진 현재에도, 기사에서 주장하는 것과 같이 평화공존을 위하여 진보정치부터 '한반도 문제의 민족관계라는 특수성을 이제는 완전히 내려놓는' 것은 평화공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의당과 민주노총의 통일에 대한 입장이 바뀌고 더 나아가 한국 정부에서 통일에 대한 입장이 바뀌는 것을 생각해보자. 대체 어떤 지점에서 남북간의 평화공존에 도움이 되는 변화가 있을까? 현 시점에서도 더 나빠질 부분만 떠오를 뿐이다.

 

현재 진보정치와 민주노총이라는 내셔널 센터, 하다못해 전환 내부에서라도 어떤 입장과 정책을 고민하는 데 있어 ‘민족 내부의 특수관계’라는 상호규정이 방해를 하는 상황이라면 평화공존을 위해 그러한 상호규정을 폐기하자고 이야기해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걸 딱히 생각하기 어렵다. 하다못해 (그게 평화공존과 관련이 있는지는 별론으로 하고) 북핵 문제를 더 신랄하게 비판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보기도 어렵다. 만약 내가 생각하지 못한 그런 입장이나 정책이 있다면 그것부터 제시되며 토론되는 게 효율적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진보정치부터 통일에 대한 추구를 포기하고 민족 내부의 특수관계를 부정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히 한국 정부까지 그러한 입장을 가지도록 노력한다는 것일 텐데, 한국 정부에서 통일에 대한 입장이 바뀌고 남북간의 특수성을 부정하는 상황을 생각해보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그건 평화공존을 위한 최소한의 합의인 남북기본합의서의 위치만 애매하게 만들 뿐이다. 민족 간의 특수관계를 부정하는 것은 남북기본합의서를 남한에서도 부정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한층 취약하게 만드는 데 동참하는 것을 의미한다. 합의가 있었지만 지키지 않고 있으니 지키라고 요구할 수 있는 상황과, 지키지 않는다고 그조차도 없는 시기로 돌아가는 건 무척이나 다른 상황이다. 단적으로 남한이 남북기본합의서를 부정한다면 남한 정부가 북한에 대해 더 적극적인 적대조치를 취하는 게 한층 더 쉬워진다.

 

나는 이 기사를 보면서 예전부터 많이 들어왔던 ‘통일이 되겠냐’의 뉘앙스가 느껴졌다. 그에 대해 내가 예전부터 하고 싶은 말은, '그렇게 치면 평화공존은 되나요?'이다. 한 독재자의 철없는 불장난으로 통일과 통일에 대한 추구의 현실성이 멀어진 것도 맞다. 그러나 동시에 그와 정확히 동일한 정도로 평화공존의 현실성 역시 멀어졌다. 현재 한반도 평화공존을 위해 진보정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남북기본합의서의 준수를 남북 모두에게 압박하고, 군사동맹체제에 반대해야 한다. 그 외에도 많은 것들이 있지만 이 모든 것은 민족 내부의 특수관계를 부정하지 않고도 할 수 있는 것들이고, 민족 내부의 특수관계를 부정한다고 더 잘할 수 있는 건 없지 않나?

 

 

* 독자의 말은 <도모>의 편집 방향 및 전환의 입장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김현근 (목성돼지)

기나긴 휴가 중인 전환 회원. 
어쩌면? 전 청소년활동가이고, 섹슈얼리티에 대한 급진적 정치를 고민하는 말 많은 성소수자입니다.
사회주의를 목적하고, 귀여움을 희망함.


*주의 : 근대적 시간관념과 자주 불화합니다.